“분명 한국 엄마들이 에티오피아의 엄마들보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더 많은데 더 불행하더라고요”
부모교육 전문기업인 그로잉맘의 이다랑(32) 대표는 2011년 당시 한 비정부기구(NGO) 소속으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유치원을 만드는 임무를 1년간 맡았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두 시간 떨어진 단디워레다 지역에는 유치원 취학 연령의 아동이 7,000명이 넘었지만 유치원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100여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들을 만났다. 에티오피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60달러(96만원) 수준으로 운이 좋은 경우 여성들도 교육기회를 얻지만 대다수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고 문맹이 된다. 이 대표가 목격한 에티오피아 여성들은 임신을 해도 몸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일터로 돌아올 정도로 여성의 몸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에티오피아 유치원은 아이들은 물론 엄마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들에게 교육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아지나 하고 회의감도 느꼈어요”
이 대표가 유치원에서 일할 현지 교사와 직원들을 뽑아서 교육하고 부모들의 상담을 맡았다. 언어를 읽고 쓰지 못해도 할 수 있는 미술 치료, 놀이 치료로 접근했다. 처음에는 더뎠지만 흡수력은 국내에서 상담할 때보다 빨랐다. 1년이 지나자 엄마들은 글씨를 배우고 싶어 하고 아이와 자신이 어떻게 다른 존재인지, 아이와의 애착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계와 관련 없이 꽃을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도 생겼다. 자신에게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
“상담가로서 다시 없을 학생들을 만난 거죠. 주는 대로 그대로 흡수하고 배운 걸 삶에 적용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성큼성큼 성장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 내 시계만 멈췄다 #경단녀
1년 반의 에티오피아 파견 기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을 사회에서는 ‘공백’으로 여겼다. 기혼이지만 아직 아이를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잠재적 휴직자’로 분류됐다. ‘임신은 언제 할 거냐’는 게 단골 질문인 면접에서 ‘회사에 지장이 없게 하겠다’는 대답을 내놓는 게 최선이었다. 수십 곳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뒤 간신히 합격 소식을 듣고 출근을 한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망했다’
임신테스트기에 붉게 표시된 두 줄(임신 양성 반응)을 보고 처음 나온 말이었다. 아이에게는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었지만 스스로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였다. 임신 소식을 전하자 회사에서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역력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핸디캡을 안고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살면서 남에게 부담이 된 적이 없는데 이 우려 섞인 눈빛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남편과 상의한 뒤에 사직서를 썼어요”
원하지 않게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된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지금도 ‘경력단절’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사실 엄마가 일을 해야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육아와 가사를 직업으로써 선택하는 엄마도 있어요. 하지만 ‘선택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예요. 대부분이 원하지 않은 채로 직장을 떠나기 때문에 자꾸 일에 미련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2013년 가을 아이를 낳은 뒤 세 달 만에 프리랜서 상담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일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창업을 한다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시계만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이 불안했다.
“임신해서 거리를 지나는데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는데 내 시계만 멈춰있는 거예요. 이대로 끝이면 어떡하지. 엄마가 된다는 게 이렇게 외로운 일이구나 싶었어요”
상담 업무에 복귀한 뒤 2년 동안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부터 청소년 대상 사이버 상담, 성인 대상 모바일 상담 등 프리랜서로 해볼 수 있는 상담 업무는 다 해봤다. 특히 엄마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할 때면 안타까움이 컸다. 에티오피아 엄마들을 떠올려보면 ‘한국 엄마들은 훨씬 가진 게 참 많은데 왜 더 불행해 할까’하는 게 아픈 부분이었다.
◇스타트업을 해보는 게 어때?
“기업 마케팅부터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까지 정보는 이렇게 많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정보가 과잉이라 엄마들이 더 병들어요. 진짜 엄마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감별할 기준을 알려주고 혹시나 잘못 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더라고요. 저도 전문가였지만 엄마들에게 전문가는 너무 멀리 있었고요”
이 같은 고민을 말했더니 남편은 스타트업 얘기를 꺼냈다. 어이가 없어서 ‘상담센터를 하라고?’ 받아쳤더니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거였다. 휴가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의 말만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그로잉맘(Growing mom)’이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에티오피아에서의 경험을 적은 글들을 올렸다. #맘스타그램 #육아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엄마가 아이와 하면 좋은 놀이나 아이와의 관계 형성에서 주의해야 할 말투, 훈육법 등을 나누기 시작했다. 콘텐츠가 쌓이기 시작하자 ‘10년 전에 그로잉맘을 알았다면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을 것 같아요’ 등 고마운 반응이 나왔다.
“지금 보면 소비자들의 ‘페인 포인트(가려운 점)’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댓글을 보면서 엄마들이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집단심층면접(FGI)을 한 셈이죠”
◇엄마도 성장통을 겪는다 #그로잉맘
지난해 3월 구글 캠퍼스 서울에서 진행하는 엄마들을 위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 2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다양한 엄마들을 만났고 상담의 길만 걷던 그에게 창업 잡힐 듯이 다가왔다.
구글 캠퍼스에서 첫 피칭(투자 설명)을 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투자사들은 엄마들의 문제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어 보였다. 또 심리 영역에 사업성이 있다는 것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사업 제안서를 들고 피드백을 받아보고 아니면 접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쯤 한 엄마가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만나자고 했다. 그 엄마는 증권사에서 일한 뒤 육아로 경단녀가 돼 전업맘으로 일하고 있는데 상담을 배우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다. 뜻이 잘 통했고 자신에게 없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뚜렷하게 있었다. 그때까지는 콘텐츠에 불과하던 ‘그로잉맘’을 사업화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준 이혜린 부대표다.
“엄마가 되는 순간 사실 외적으로는 몸도 약하고 사회에서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적으로는 정말 커지는 시기에요. 엄마가 갖고 있는 상처, 약한 점이 아이와 남편에게 영향을 주거든요. 모든 엄마들은 마더후드(Motherhood·엄마로 살게 된 시기)를 보내면서 성장할 수 있고 그럴 이유가 있어요”
엄마로 살게 된 인생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게 그로잉맘의 모토다. 이 대표는 가정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창업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엄마를 위한 교재들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된 건 큰 도움이 됐다. 이후 기업 고객과의 계약을 성사할 때까지 두 창업자는 월급 없이 버텼다.
‘그로잉맘’의 가장 큰 양대 사업 축은 오프라인 교육과 기업과의 협업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을 바탕으로 엄마의 심리들을 데이터화한 그로잉맘표 교육 콘텐츠를 온라인으로는 네이버 포털 맘키즈판과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유통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한다. 이게 한 축이라면 기업이 육아와 관련된 제품 출시 단계나 마케팅 단계에서 협력해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해서 기업에게는 전문적인 이미지를 입히고 엄마들에게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 모든 직원이 엄마인 스타트업
이 대표는 스타트업답지 않게 천천히 가고 싶다고 말한다. 스타트업답지 않은 것의 기준을 묻자 스타트업이 빨리빨리 수익모델을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조직원들에게 속도를 요구한다면 이 대표는 직원들이 가정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회사가 다른 회사와 다른 점은 직원들이 모두 엄마라는 점이다.
“무리하게 요구하면 가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요. 이건 처음에 저희가 지향했던 게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9 to 6’라는 출퇴근 시간도 엄마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하원시키기 위해서 엄마들은 조금 더 늦게 출근하고 일단 4∼5시에는 퇴근을 한다. 이후에 집에서 야근을 하더라도 최소한 아이에게 필요한 일들은 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다. 이 회사에는 점심시간이라는 게 따로 없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갖는 것보다 그 시간에 집중을 해서 한시간 먼저 끝나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다섯살인 아들 민후를 일주일에 두 번은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있다. 유치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예전보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크게 줄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이 부대표가 이달 중순에 출산을 앞두고 있고 다른 직원도 임신 중이다. 아이가 수두나 눈병 등 전염병에 걸리면 바로 휴가를 준다. 전염병에 걸려서 유치원도 보낼 데가 없으면 얼마나 난감한 지 이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깨도 무겁다. 아이를 둔 엄마 창업자가 아이를 키우거나 임신한 직원들로 구성된 회사를 이끌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자본금을 투자하지 않고도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만큼 성장했다. 올해 성사한 계약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연말에는 엄마 직원들을 여럿 뽑을 예정이다.
그에게 가장 아쉬운 건 여성들이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은 슈퍼우먼을 요구하지만 슈퍼우먼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사회가 도와주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의 목표는 앞으로 엄마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 자신처럼 ‘망했다’는 반응이 안 나오게 하는 것이다.
“엄마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육아를 할 때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그로잉맘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걸 보여줘야 우리 사회에 한 방울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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