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에서 또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이번 깜짝 메달의 주인공은 ‘제2의 모태범’으로 불렸지만 월드컵랭킹 10위권 밖에 머물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김태윤(서울시청)이다. 이로써 한국 남자 빙속은 자국 올림픽에서 중·장거리 메달을 휩쓸며 쇼트트랙에 이은 새로운 효자종목으로 급부상했다.
김태윤은 23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1,000m 경기에서 1분8초22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은 지난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의 김윤만(은메달), 2010년 밴쿠버올림픽의 모태범(은메달) 이후 세 번째다. 김태윤은 15조 아웃코스에서 출발해 200m 구간을 16초39로 통과한 후 막판 노르웨이의 호바르 로렌첸(26)의 뒤를 이어 결승선에 들어왔다. 금메달은 네덜란드의 키엘트 나위스가 차지했다.
김태윤은 지난 소치동계올림픽 성적이 고작 30위,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 1~4차 대회 합산 성적이 15위에 불과한 중위권 선수였다. 특히 2016년 12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김태윤은 스스로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는 “선발전 실수로 2017년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던 순간이 힘들었다”며 “몸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좌절하기보다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에 집중했다. 김태윤은 올림픽 시작 전부터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한 이상 목표는 무조건 메달”이라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당당하게 얼음판을 달리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얼음이 상대적으로 무르다고 판단하고 체중을 감량하는 등 치밀하게 자기관리를 했다. 다른 경기가 아닌 올림픽에만 집중한 판단이다.
이날 전체 18개 조 중 15번째에서 뛴 김태윤은 나머지 6명 선수의 기록을 기다려야 했지만 결승선을 통과하고 기록을 확인하면서 본인의 메달을 직감했다. 그는 “내가 생각한 기록보다 잘 타서 메달을 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환호했다”며 “처음으로 월드컵 때보다 랩타임이 많이 안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마지막 전 조부터 2위 순위를 유지하는데 그때부터 꿈만 같았다”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한국 남자 빙속은 500m 차민규(은메달), 1,500m 김민석(동메달), 팀추월 은메달(이승훈·김민석·정재원), 이날 김태윤이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총 6개 종목에서 4개 메달을 수확하게 됐다. 여기에 이상화가 여자 500m 은메달까지 획득하면서 금메달은 없지만 중·단거리에서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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