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경영자’로 불리는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열기구 여행을 즐긴다. 미국 메인주 슈가로프에서 스코틀랜드까지 2,900마일(약 4,670㎞)이나 되는 거리를 열기구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고 태평양 횡단에 나서기도 했다. 수중 항공기 ‘네커 님프(Necker Nymph)’를 보유한 그는 자신이 소유한 섬에서 종종 수중 탐험을 즐기고는 한다. 이처럼 독특한 취미는 그가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여행사 ‘버진갤럭틱’을 설립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주여행의 첫 고객은 브랜슨 회장과 그의 가족으로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한 배우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등 유명인 700여명이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다. 브랜슨 회장은 “우리가 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우주여행이 눈앞에 있다”며 “이는 앞으로 우리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독특한 취미나 생활습관은 자연스럽게 경영 스타일에 녹아들고 때로는 사업 아이템으로 연결된다. 경영자의 취미가 기업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재계에서는 CEO의 관심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한다. 취미 자체가 곧바로 사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일수록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몸으로 체득한 리더십, 현장 경영으로 이어지다=LS그룹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다양한 취미를 가진 오너 일가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자전거 마니아이며 구자균 LS산전 회장은 수준급의 스킨스쿠버 실력을 뽐낸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은 바둑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구자열 회장은 자타공인 스포츠 CEO인데 2002년 참가한 트랜스알프스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했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총 650㎞를 6박7일간 발바닥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아 동양인 최초로 트랜스 알프스 완주자로 이름을 올렸다. LS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신입사원들과도 허심탄회하게 자리를 갖고 막걸리를 기울인다”며 “사이클 동호인과 함께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도로 경영’의 힘이 ‘현장 경영’으로 이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구자균 LS산전 회장은 어릴 적부터 물을 좋아해 학창 시절 잠수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스쿠버강사 자격시험에 도전해 1년 만에 수석으로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요즘은 직접 찍은 수중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고객사에 선물한다.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는 승마를 즐기는 CEO로 유명하다. 하루 12기승(약 12시간 탑승)을 마다하지 않는데 그의 말 사랑은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베르아델승마클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충체육관과 맞먹는 크기의 실내 승마스타디움은 승마클럽의 상징이다. 그는 “승마야말로 최고의 자기 수양 방식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80개가 넘는 우리 회사의 특허가 대부분 말 등 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말과의 교감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인내심 등 경영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얼리어답터’ 정용진 부회장
유행에 발빠른 행보, 키덜트 문화 앞장
◇CEO의 취미, 핵심 사업이 되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 경영자 가운데서도 ‘얼리어답터’이자 ‘트렌드세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너 경영인으로 보기 드물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소통을 활발히 하고 유행에 앞서는 모습으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인다. 그의 관심사가 사업으로 연결된 첫 번째 사건은 스타벅스의 한국 입성이었다. 미국 유학시절 즐기던 스타벅스를 국내에 들여오며 ‘테이크아웃 커피문화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놀이터’를 콘셉트로 한 통합형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 역시 정 부회장의 키덜트(Kidult) 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최근 3호점인 고양점까지 내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스타필드는 정용진의 아이덴티티가 십분 발휘되고 있는 공간이다. 워터파크와 스포테인먼트 테마파크,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왕국과 최신 VR 시뮬레이터까지 갖춘 게임센터가 한곳에 모여 트렌드세터로서 정 부회장의 안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서비스와 제품을 내놓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제품을 빌려 쓰는 렌털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는데, 이 같은 역발상 아이디어가 바로 바둑에서 비롯됐다. 아마추어 5단의 실력자인 윤 회장은 지금도 고민이 생기거나 경영 판단이 필요할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바둑을 둔다. 그는 “바둑을 두다 보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른 한 수를 읽는 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드러머’ 이만근 대표
“악기로 스트레스 풀면 집중력 UP”
◇스트레스는 CEO의 숙명, 그들은 이렇게 푼다=CEO가 회사를 이끌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위기는 숙명이다. 혼자서 온전히 위기를 감내해야 하는 만큼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일반인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CEO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거나 명상을 하는 등 저마다 치유법을 갖고 있다.
특장차 업체인 신광테크놀로지를 이끌고 있는 이만근 대표는 퇴근 시간이 되면 본사 사옥 4층 ‘비밀공간’으로 향한다. 2016년 안산 스마트허브 내 옛 오스람코리아 부지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그가 꼭대기 층 일부 공간을 직접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는 드럼 한 대와 대형 스피커가 자리 잡고 있다.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쪼개며 현장을 누볐던 그는 몇 년 전 몸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 평소 즐기던 술·담배를 끊었다. 다시 건강을 되찾고 현장에 복귀한 그는 스트레스를 드럼 연주로 풀고 있다. 이 대표는 “매 순간 경영 현장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면서 “이곳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드럼을 한껏 치고 나면 머리도 맑아지고 다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즐거움’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윤재환 TJ미디어 회장의 색소폰 실력은 수준급이다. 지난 2009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그는 저녁을 먹으러 가던 도중 광장에서 색소폰이나 북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시민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각종 오페라를 감상해왔지만 그날 프랑스 시내 광장에서 본 시민들의 모습이 최고였다”며 “마치 천사들이 연주회를 연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색소폰을 배웠고 동호회도 꾸렸다. 어느덧 8년차 색소폰 연주가인 윤 회장은 가양동 본사에 사내 공연장 ‘티움’을 만들어 직접 공연한다.
매달 셋째 주와 넷째 주 수요일에 사내 음악 동호회인 ‘TJ밴드’와 색소폰 동호회 ‘TJ앙상블’의 공연이 열리는데 TJ앙상블 회원인 윤 회장이 무대에 오를 때면 수준급 연주에 감동한 직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고는 한다. TJ미디어의 색소폰용 노래반주기도 이러한 윤 회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윤 회장은 “직원, 그리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민정·서민우·백주연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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