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라이프생명보험의 2대 주주인 현대모비스가 유상증자에 불참하기로 하면서 최대주주인 현대차그룹이 본격적으로 발을 빼는 모습이다. 현대라이프는 정태영(사진)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부회장(현대라이프생명 이사회 의장)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지난 2012년 출범시켰지만 누적된 경영악화로 부실이 심화됐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유상증자가 필요하지만 현대모비스 등이 빠지면서 2대 주주인 대만 푸본이 3,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의 상당 부분을 떠안게 됐다. 최대 주주도 푸본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라이프가 추진하는 3,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서 현대모비스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불참을 결정했다. 모비스는 그룹 순환출자 해소 목적과 함께 최근 대내외 여건을 감안해 본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대라이프에서 사실상 발을 빼는 수순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현대라이프 지분율은 푸본생명 48%, 현대모비스 30%, 현대커머셜 20% 순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모비스와 커머셜이 합쳐 50%의 최대주주였으나 이번 유상증자에서 현대모비스가 빠지면서 푸본이 1대 주주에 오르게 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보는 시각도 부정적으로 확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정 부회장은 부실했던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보험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당시에도 보험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보험업을 모르고 순진하게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이라는 것은 보험료는 높고 손해율은 안정적인 상품을 많이 팔아야 볼륨이 커지는데 신생 현대라이프는 위험률이 높은 구조의 상품을 되레 저렴하게 팔아 구조적인 부실을 잉태해왔다”며 “카드사처럼 홍보·마케팅에 열중해 본질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출범 초기에 현대카드 출신들을 대거 영입해 상품판매 드라이브를 걸겠다며 자판기에서 상품을 뽑듯이 싸고 단순한 상품을 많이 파는 전략을 취했지만 손해율이 높아지면서 현대라이프의 경영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현대라이프는 출범 이후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3·4분기까지만도 425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영업수익을 늘리며 외형 확장은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연간으로는 전년에 비해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3·4분기 누적으로 1조2,746억원의 영업수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줄어든 것이다.
모비스가 유상증자에서 빠졌지만 현대커머셜이 남아 있어 정 부회장의 영향력은 일정 부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라이프는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지난해 말 176%인 지급여력(RBC)비율이 200%를 넘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푸본생명과 현대커머셜의 실권주 배분을 6대4로만 가정해도 푸본생명이 53%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현대커머셜이 29%로 2대 주주가 되고 현대모비스는 17%의 3대 주주로 내려앉는다. 그러나 현대라이프가 최소 1조원대 증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번에 3,000억원으로 급한 불을 끄지만 정 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커머셜이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지금까지 막대한 자금을 넣고도 정상화가 더딘 상황에서 정 부회장의 책임론도 나올 수밖에 없다. 현대라이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실시되는 이번 유상증자는 한국과 대만 양국의 금융당국 승인 절차를 고려해 이르면 올해 2·4분기 중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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