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은 입맛에 맞는 숫자만 골라내고 싶은 유혹에 종종 빠진다. 단적으로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은 매출액이 됐건 영업이익이 됐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수치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한다.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교수들이 논문을 쓸 때도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통계를 위주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맡은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조차 이 같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일자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개인 근로소득이 하위 10%만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1.8%포인트 하락했고 나머지 90%는 지난해 대비 2.9%포인트에서 8.3%포인트 증가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가구주가 자영업자거나 은퇴·실직 등으로 무직이 된 비근로자 가구를 제외한 근로자 가구만 대상으로 한 것이다. 정작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나 해고된 실직자 등은 쏙 빠진 통계가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의미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이번 정부 들어 차고 넘친다. 1년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집값 과열의 원인이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라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근거로 ‘주택 소유별 거래량 증감률’을 제시했다. 최근 1년 새 주택 거래량을 비교했더니 5주택 이상 보유자의 강남 4구 거래량이 53%로 가장 많이 늘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5월 기준 무주택자 거래량은 2,103건으로 전체의 53.9%를 차지한 반면 5주택 이상 보유자의 거래량은 98건(2.5%)에 불과했다. 5주택자의 절대 거래량이 워낙 적다 보니 조금만 늘어도 증가율은 뻥튀기된다. 하지만 김 장관은 2.5%에 해당하는 5주택자들을 강남 집값 급증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비슷한 시기 통계청이 공개한 공공 부문의 일자리 통계도 마찬가지였다. 사립학교 교직원 수를 쏙 뺀 채 2015년 기준 국내의 공공 일자리 숫자가 233만6,000개로 공공 부문의 비율은 8.9%에 불과하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숫자를 내놓았다. 대다수의 OECD 회원국이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급하는 사립학교 교원 등을 공공 일자리에 포함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 주위에 있는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수석들이 자신들의 정책 성과를 강조하거나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대통령에게 입맛에 맞는 숫자만 보고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원인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정책의 당위성만 강조하면서 자의적인 통계를 내세워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 대통령 역시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의 실책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6·13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고 모든 것을 덮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nevermind@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