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송변전 업체인 A사는 올해 일감이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국내에서 새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증설하는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이 결정타가 됐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해외 판로 개척이 원천적으로 힘든 전력계통의 성격상 국내에 공장이 들어서야 여기에 맞춰 초고압 변전 설비 등 매출이 크게 발생하는 구조”라며 “고객사 상당수가 해외로만 나가고 있어 국내는 돈도 안 되는 유지·보수 서비스 수요가 대부분”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국내에 투자 좀 하라’고 읍소하면 (고객사들은) 밖이 인건비도 싸고 세금 감면, 부지 제공 등의 혜택도 많아 굳이 비용이 증가하는 한국에 남을 유인이 없다는 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A사의 사례는 ‘제조업 엑소더스’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의 일단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시행 등으로 심해지는 고비용 구조, 팽배한 반기업 정서를 탈(脫)한국행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떨어지는 노동 유연성, 후진적 임금체계, 낮은 생산성 대비 고임금 등으로 생산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해외와 비교하면 극명히 대비된다. 일본만 해도 해외 생산기지를 폐쇄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기업의 비율이 지난해 14.3%(2018년 제조업백서 기준)로 전년 대비 2.5%포인트 늘었다. 자동차 업체 혼다가 멕시코에서 사이타마현으로 23년 만에 공장을 옮겼고 시계 제조사인 카시오도 저가형 모델 생산을 위해 야마가타현에 자동화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도 피아트크라이슬러·캐리어 등이 본국으로 귀환했다. 지난해에만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로 무려 17만1,0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정부 주도의 친기업 정책이 견인차가 됐음은 물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경우 지난해 말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는 세제개편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리쇼어링 기업에 공장 이전비를 최대 20% 지원하는 정책 등도 내놓았다. 일본도 법인세 인하, 노동 유연화 정책, 엔저 유도,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우리 정책 방향이 비용을 늘리는 쪽으로 고안돼 문제”라며 “정부가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높은 인건비는 차치하더라도 사사건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노조도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7일 현대자동차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다음달 2일 파업 찬반 투표에 나선다고 공지했다.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별다른 이슈가 없는 만큼 노조 집행부 스스로 “휴가 전 타결”을 선언했지만 상황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노조는 관례상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올해도 일손을 놓으면 현대차는 2011년 무분규 타결 이후 7년 연속 파업 기록을 쓰게 된다. 업계의 한 임원은 “국내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도요타·포드보다 3~5시간 더 긴 데는 이런 파업문화가 자리한다”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주의 파고도 울고 싶은 기업의 뺨을 때리는 격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힘든 차에 아예 해외로 공장을 옮겨 통상분쟁을 피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LG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설립한 것을 비롯해 관련 사례가 수두룩하다. 현대·기아차(미국)와 만도(인도) 등 자동차부품 업체, 현대제철 (인도) 등은 해외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철강 업체인 세아제강·넥스틸 등은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수요에 대비하는 차원이지만 생산비 부담, 관세 부과 리스크를 덜려는 의도가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내외 변수가 기업을 옥죄는 상황인 만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조민규·변재현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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