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제품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견제로 최근 2년 간 해외에서 신규 오더를 받지 못했습니다”(정희철 대용산업 대표)
“작년과 올해 총 45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확장 이전합니다. 우리 같은 기업에 저리의 대출 등 금융지원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정형모 에이엔피 사장)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 첫주를 맞아 2일 중소기업 현장을 찾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예상하지 못한 기업인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경기도 부천과 시흥에 각각 위치한 두 기업은 근로자가 300인 이상으로, 지난 1일부터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 홍 장관은 법 시행에 따른 현장 애로 사항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지만 기업 대표들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 설비 투자 확대에 따른 자금 경색, 경기 불황으로 인한 매출 감소 등을 더욱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부천에 소재한 자동차 전장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인 에이엔피의 정형모 사장은 “지난해 국내 완성차 대기업의 판매 대수가 목표 대비 100만대 가량 밑돌면서 회사 매출이 처음으로 전년 대비 역성장했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공격적인 투자로 품질을 끌어올려야겠다는 판단에 지난해 250억원, 올해 200억원을 들여 인천 남동공단에 새 공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사가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면 좋겠지만 언제까지 기대만 할 순 없어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에 전력하기로 했다”며 “우리처럼 힘든 환경에서도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겐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종학 장관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도와줄 목적으로 조성한 펀드도 있고, 중기부도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는 중소기업에게 다양한 형태로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는데 홍보가 덜된 것 같다”며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인들이 애국자다. 지원책을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선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현석 에이엔피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은 “우리 회사는 공장을 하루 24시간 풀 가동하는데 지난 2006년 근무형태를 주야 맞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바꿔 당장 현장의 큰 혼란은 없다”면서도 “다만 여름철 휴가 기간에 연차를 사용하는 근로자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처럼 4조3교대를 하긴 어렵고 그나마 3조2교대가 대안인데 이마저도 법을 그대로 준수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풀어주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인력 운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시흥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업체 대용산업은 지난해 매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이 회사의 매출은 80% 이상이 미국 등 해외에서 발생하는 지난해 원화 강세로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회사가 조금 어렵더라도 정부 시책을 따르는 게 맞다며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6월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돌아온 건 경기 불황과 환율 하락으로 인한 매출 감소다.
정희철 대용산업 대표는 “최근 들어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원·달러 환율이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수출 중소기업들은 부담을 느낄 만큼 낮은 구간에 머물고 있다”며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 인상률 16.4%까지 더하면 기업들은 가만히 앉은 상태로 20% 후반대까지 비용이 올라간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해외 고객사들은 우리 회사 제품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산 제품 가격이 20~30% 저렴하다 보니 그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면서 “몇몇 해외 고객사들은 차라리 우리 회사 공장을 자기들 나라 근처로 옮기면 안되냐고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정 대표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그나마 여유가 있어 6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단축에 들어갔지만 주변 공단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힘들다고 아우성”이라며 “정부가 정말 중소기업인들을 생각했다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적용했어야 하는데 너무 성급하게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제조업체들의 설비는 주로 일본에서 들여오는데 보통 주문을 하고 수령하는데 까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 걸린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자동화 설비로 대응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6개월의 계도기간이 있지만 설비투자에 나선 기업에 대해선 실제 설비를 받을 때까지 근로시간 단축을 유예시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홍 장관은 “근로시간 단축을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감한다”면서도 “순차적으로 하면 좋겠지만 의사결정이 이미 국회에서 이뤄졌고 정부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6개월의 계도기간 중에 노동부에서 근로감독관이 나올 때 중기부도 지방청에서 공무원을 파견해 중소기업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보완책으로 시행 중인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 ‘청년고용장려금 사업’ 등도 적극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은 신규채용 인건비를 1인당 월 80만∼100만원씩 2년간 지원하고 재직자 임금감소분을 1인당 월 10만∼40만원씩 2년간 보전한다. 청년고용장려금을 통해서는 청년 정규직 채용시 1인당 연 900만원씩 3년간 지원한다.
홍 장관은 “노동시간 단축은 중소기업 경쟁력을 높이며 80년대 후반 이후 쇠락하는 경제 추세를 전환하고, 과로 사회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선택”이라며 “정부는 중소기업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기업인들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부족한 부분은 즉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부천·시흥=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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