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다음달 초 중국 출장길에 오른다. 특별한 공식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지 직원 격려와 중국의 핀테크 부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KB금융은 올 상반기 중국에서 8,000만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미국 아마존처럼 중국의 텐센트·알리바바 등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은행 영역에 뛰어들면서 KB금융의 장기실적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윤 회장이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2017년 맥킨지 보고서’에서도 언급됐듯이 세계 은행업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오는 2025년까지 9.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비금융사들이 만든 디지털뱅킹 플랫폼이 금융산업으로 확장될 경우 수익성이 절반 수준(5.2%)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이 매년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는 도태를 걱정해야 될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실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금융 진출은 낯설지 않다. 선진국·후진국 가리지 않고 핀테크가 대세다. 대표적인 예로 케냐 이동통신사 사파리콤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 엠페사(M-Pesa) 가입자는 지난해 6월 기준 2,262만명에 달한다. 케냐 같은 나라에서 핀테크가 성공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금융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모바일을 통한 금융거래가 가능한 핀테크가 급성장하고 있다. 엠페사의 케냐 간편결제·송금시장 점유율은 80%를 육박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케냐 금융 인프라가 열악해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이 드문데 엠페사는 휴대폰 번호를 계좌번호처럼 등록해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급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은행과 같은 영업점포를 전혀 갖지 않았으면서도 휴대폰을 기반으로 한 소액금융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개인간거래(P2P) 업체 등 모바일뱅킹을 통한 대출 비중이 지난 2013년 1%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25%로 급성장했다.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 시 단순히 국내 대출 경험만으로는 현지에서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국내 은행이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고는 하지만 금융당국이 수수료 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이 이자로만 돈을 버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된 결과다. 자기자본이익률(ROE)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선진국 문턱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다. 심지어 중국의 17.0%는 물론 싱가포르 13.2%, 일본 8.3%에도 못미치는 6.9%에 머물러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은행 최고경영자(CEO)는 매년 해외를 돌며 기업설명회(IR)을 하면서 투자를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위기감에 은행 CEO들이 상반기 역대급 이익에도 초긴장하고 있다. 현실 이익에 안주하다 보면 은행이 아닌 IT 기업인 아마존이나 텐센트·알리바바에 먹힐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은 물론 디지털 전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내부 보고서나 읽으며 결재하던 CEO들이 직접 국내외 현장을 돌면서 시장진출 탐색과 M&A 대상 물색 등 야전사령관이 된 것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올해 충당금은 반기 역사상 최저치일 정도라 실적에 함정이 있고 내년부터는 이 같은 흐름이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충당금 환입 덕에 이익이 잘 포장됐고 거품은 머지않아 빠진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윤 회장도 최근 직원들에게 ‘글로벌’과 ‘디지털’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투자에 비해 단기적 성과물이 나오기 힘든 분야지만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이 금융 업계의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어 글로벌과 디지털만이 우리의 살길이고 여기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올 하반기 그룹의 미래 비전을 위한 광폭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에 동행하면서 수년간 끌어온 인도 구르가온 지역 사무소의 지점 전환을 위한 예비인가를 획득했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동남아시아와 디지털을 연계한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최근 한두 달 사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수시로 방문했다. 베트남에서는 카카오로 불리는 ‘잘로(Zalo)’, 전자지갑 ‘모모(MoMo)’ 등 대표 디지털플랫폼과 제휴하고 신용대출 서비스를 선보였다. 인프라 구축이 더딘 현지 특성에 맞춰 핀테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알리바바가 금융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을 통해 확장하듯이 우리 금융사도 규제 없이 협업할 수 있는 해외 핀테크 업체와 비즈니스 모델을 더욱 확대하고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은 표준화된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백화점식 영업에서 탈피해 하이테크 기업과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필요자금을 적재적소에 제공하면서 자산규모가 2006년 60억달러에서 2016년 450억달러로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22.3% 성장했다. 에어비앤비·우버·트위터 같은 혁신기업들이 스타트업 시절부터 이들 은행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늘어난 이익을 모험자본에 공급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혁신성장기업에 대한 직접투자를 화두로 삼고 있다. 한 기업에 최대 10억원씩 총 100억원을 투자하는 우리은행 공모에는 250개 업체가 참여했고 다음달 최종 투자기업이 선정될 예정이다. 손 행장은 상시적인 혁신기업 발굴과 투자를 위해 투자은행(IB)그룹에 ‘혁신성장금융팀’을 신설했고 직접투자와 관련해서는 책임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면책 기준을 넣었다. 우리은행은 또 지난달 ‘임팩트투자펀드’에 50억원을 출자했고 하반기에는 혁신모험펀드 약 10곳에 1,000억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금융사가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분위기라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힘든데 위험성이 높은 투자도 과감하게 진행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보고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원·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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