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급락의 공포감이 국내 증시를 엄습했다. 11일 코스피지수는 장중 100포인트가량 빠지는 등 2,130마저 무너졌고 코스닥지수도 40포인트 이상 밀려 710선 밑으로 후퇴했다. 코스피는 지난해 4월12일(2,128.91) 이후, 코스닥은 지난해 11월8일(709.11) 이후 최저치였다. 특히 하락률은 코스피(-4.44%)의 경우 2011년 11월10일(-4.94%) 이후 7년 11개월 만에, 코스닥(-5.37%)은 지난해 2월12일(-6.06%) 이후 최대였다. 코스피 하락으로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이 65조원이나 증발했다. 역대 최대치다.
전날까지 하락했던 증시가 단기 저점을 형성하며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밤사이 미국 증시 급락의 여파가 앗아갔다. 10일(현지시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나스닥지수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고 국내 증시에도 장 초반부터 불안감이 찾아왔다. 개장 초부터 2%대로 하락한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의 순매도(4,869억원)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최근 순매수를 이어가며 주가를 방어하고 있는 기관이 2,433억원을 순매수했고 개인도 2,171억원이나 사들였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인들의 투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는 개인들이 2,000억원 넘게 투매했다. 이날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33.22% 오른 19.61포인트로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승 종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무너졌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23개 종목만 올랐고 865개 종목이 하락했다. 시총 상위 종목들도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가 4% 넘게 빠진 것을 비롯해 시총 100위까지 GS리테일(007070)(0.12%)만 유일하게 오르고 모두 하락했다.
국내 증시 급락의 진앙은 미국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자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28일부터 8거래일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2,79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2,682억원을 팔아치웠다.
증권가에서는 이날 약세장의 원인을 △9월 FOMC 전후로 본격화된 미 국채금리 상승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리스크 재평가 △미중 무역갈등 △기술주 실적 우려 등으로 분석한다. 다른 악재들까지 겹치며 증시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30원 넘게 상승(원화 약세)했고 국제유가도 4년 새 고점인 배럴당 70달러대를 넘나들고 있다. 원화 약세, 유가 상승은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며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아시아개발은행(ADB)·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대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유일한 호재로 평가되던 남북 화해 분위기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다음달 중간선거 이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하자 경협주가 급락하며 상승 동력을 잃었다. 벌어진 한미 금리 차를 만회하기 위해 연내 확실시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증시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증시의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국내 증시의 반등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기술주 급락을 대체할 만한 성장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경민 대신증권(003540) 마켓전략실장은 “지금까지 채권금리 급등, 달러 강세 등 가격 변수가 시장 불안심리를 자극했던 것과 달리 미국 기업의 실적과 경제 변수와 같은 펀더멘털 요인이 미 증시 폭락의 원인”이라며 “미 증시의 다운사이드 리스크 압력을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