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연구 프로젝트의 98%가 성공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연구는 90% 이상 실패해야 정상입니다. 실패해도 여전히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 보상이 이뤄지는 환경이 갖춰져야 과학적 발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저자이자 ‘창의성 전도사’로 불리는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간대 생리학과 교수는 16일 ‘서울포럼 2019’ 특별강연에서 “발견은 누군가를 만나 흥미로운 질문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 우연히 찾아온다”면서도 “준비된 사람만이 그 발견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널에 실을 논문을 써야 한다거나 졸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가 아니라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자유로운 연구를 하는 분위기에서 과학적 발견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호기심과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데서 과학의 발전이 이뤄진다고 봤다. 그는 “노벨상 웹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호기심(curiosity)’ 관련 단어가 428번, ‘궁금증(wonder)’ 관련 단어는 702번 나올 정도로 수상자들은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이었다”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1시간이 주어지면 55분 동안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법은 5분만 생각하겠다고 했듯 질문이 뭔지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좋은 질문의 조건으로는 △너무 포괄적이지도 편협하지도 않다 △답할 수 있다 △일반화할 수 있다 △답을 생각했을 때 흥미롭다 △아무 가정도 없는 천진난만하다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다 등을 꼽았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자연을 보면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면서 “‘하늘은 왜 파랄까’와 같은 뻔한 내용을 놓고도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정을 깨버리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관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과학은 실험실에서 이론을 추출하고 검증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구름의 발생을 연구해 ‘안개상자’ 등을 만들고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찰스 윌슨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윌슨은 지난 1927년 노벨상 수상자 연회에서 “연구주제를 선택한 것은 어떤 심사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1894년 가을 스코틀랜드 산 위에서 본 구름 때문이었다”며 “구름의 아름다움에 반해 실험실에서 같은 현상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 연구의 가장 큰 동기”라고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좋은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오고, 호기심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이 여러 분야의 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이른바 ‘박학다식(polymathy·폴리매시)’의 개념이다. DNA 염기서열 분석법을 개발한 노벨화학상 수상자 월터 길버트는 생물학자이자 물리학자였고, 훌륭한 사진사이기도 했다.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아널드는 기계공학자·우주공학자·화학공학자이면서 여러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업가였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구 분야를 바꿨다가 머리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면서 “학생들이 통합적 교육을 받아 모든 지식이 연결되고 접목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진 과학자와 이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말로 기초과학 발전의 토양이라는 게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학교를 중퇴할 뻔했거나 몇 번이나 대학원 입학 지원을 하는 등 훌륭하지 못한 학생이었다”며 저명한 과학자들이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질 만한 무언가를 찾았기 때문에 성과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유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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