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 아시나요? 남쪽의 귤을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인데, 물과 땅이 바뀌면 사람도 사물도 성질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해외에서 쇼핑을 하거나 직구로 물건을 사다 보면 이 단어가 종종 떠오릅니다. 미국에서는 저렴하게 즐기는 스타벅스나 블루보틀이 한국에만 오면 훌쩍 비싸지고, 반대로 한국에서는 비싼 국산 가전제품이 오히려 미국에서는 반값에 팔리니깐 말이죠. 태평양만 건너면 치솟는 가격, 대체 진짜 이유가 뭘까요.
사실 상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많습니다. 동네 밥집만 봐도 가게 임대료부터 종업원들의 월급, 재료비, 손님의 많고 적음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죠. 동네 주민들의 소비 스타일, 주변에 비슷한 밥집이 있느냐 없느냐 등도 영향을 미칩니다. 동네 밥집도 이런데 글로벌 기업들의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오죽이나 많을까요.
국가별로 가격이 달라지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세금 문제가 있습니다. 와인이 대표적인데 수입되면서 여러 세금이 붙어서 현지보다 훨씬 비싸지곤 하죠. 예컨대 현지에서 100유로에 팔리는 프랑스 와인이 국내로 수입되면 관세 30%, 주세 30%, 교육세 10%, 부가세 10%가 붙어서 현지가 보다 1.5배 가까이 비싸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다 운임비나 보험료, 수입사 마진 등이 포함될 경우 값이 2배까지 치솟죠.
‘가격 헬조선화’ 두 번째 이유는 인구와 시장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일례로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장터로 인구도 한국보다 6배 많고 1인당 소득 수준도 2배 높습니다. 그렇기에 대량 생산으로 인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 가능하죠. 더 많이 팔면 더 싸게 팔 수 있다는 일종의 ‘박리다매’ 입니다. 삼성전자만 보더라도 한국보다 미국에서 TV를 20배 더 많이 팔고 있고 실제 시장도 미국이 한국보다 20배 더 크다고 하죠. 당연히 할인 행사도 많이 할 겁니다. 국산 자동차와 TV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더 싸게 팔리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유통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한 문제도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에 글로벌 제조사들이 앞다퉈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유통망도 매우 넓고 다채롭습니다. TV의 경우 베스트바이, 타겟, 월마트 등의 대형 양판점과 아마존 등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제품을 대량 매입해서 가격을 한 차례 낮추고, 소매 과정에서 각종 프로모션을 펼쳐 또 한번 가격을 낮추곤 하죠. 수요와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소비자들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겁니다.반면 한국은 이른바 유통 3사(혹은 4사)라 불리는 대기업들이 온라인부터 오프라인까지 대부분 시장을 장악하고 있죠.
와인 등 수입 제품도 소수의 수입사와 소수의 도매상, 소매점 정도로 유통 구조가 단조롭다 보니 오히려 경쟁이 적고 높은 가격으로도 독점이 가능한 구조가 된 겁니다.
여기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도 가격 상승에 한 몫 합니다. 고객 서비스를 위한 비용 등이 비교적 높고 그 값이 결국 제품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어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싸게 팔린다는 프리미엄TV의 경우 배송, 설치, AS비가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 포함한다면 가격은 당연히 오르겠죠. 저렴한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을 점령한 이케아가 국내에서는 기대보다 실적이 좋지 않은데, 이런 부가 비용 문제에서 비롯합니다.
한샘이나 삼익 등 우리나라 가구업체는 배송, 설치비가 없는데 이케아는 10만 원까지 추가로 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다지 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죠.
이런 수많은 이유 때문에 태평양을 넘는 물건들의 가격이 비싸지곤 하지만 사실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샤넬의 명품 가방이나 애플의 아이폰이 특히 그런데 이런 브랜드들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홀대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죠. 아이폰만 봐도 최근 신제품을 출시하며 일본은 물론 중국, 인도에서까지 가격 할인 정책을 펼쳤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빠졌습니다. 심지어 신제품 첫 발매국에 포함하지도 않았죠. 이 상황은 안타깝게도 애플이 볼 때 한국 시장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로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소비력이 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데다 인구 규모나 시장 잠재력 역시 중국·인도 등에 비해 부족하다고 본 거겠죠.
그렇다면 우리의 5,000만 인구로 애플이나 샤넬의 콧대를 꺾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해답은 영화 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떠올려 보면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나 톱스타들은 인구가 적고 소비력이 낮은 한국 시장을 잘 찾지 않았습니다. 가끔 있던 내한 스타들도 일본 가는 길에 반나절 들러 가는 정도였죠. 하지만 요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벤져스 등 대작 영화 개봉을 앞두면 무조건 한국에 들러 각종 예능에 출연하기도 하고 관객들과 만남도 가집니다. 이건 결국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 관객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보는 눈도 높을 뿐 아니라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한 입소문을 내는데도 일가견이 있어 영화를 히트시키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한국 관객들이 높은 점수를 주면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빈번해지니 콧대 높은 할리우드도 우리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고객이 ‘호갱’이 되지 않을 방법은 결국 우리가 지금보다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일에 달려있습니다. 제품을 잘 이해해서 불합리한 부분들은 지적해주고, 뛰어난 기능은 한껏 활용해가며, 세계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멋지게 사용해 주면 됩니다. 그럼 언젠간 콧대 높은 애플, 샤넬도 신제품과 독점 제품을 한국에서만 내놓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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