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니어 매거진에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7가지 주제에 대해 버킷 리스트 서베이를 한 적이 있다. 전체 버킷 리스트 목록에 1위는 예상 외로 ‘재능 기부하기’였다. 은퇴를 앞두고 긴 인생을 살아보니 세상은 더불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 연륜이 생긴 탓일 것이다. 그런데 남은 세월은 남을 좀 돕는데 쓰고 싶다는 좋은 의지와는 달리 실제 통계에서는 각박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를 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기부 경험과 향후 기부 의향은 줄곧 감소 추세이다. 146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8년 세계기부지수에서도 한국 종합기부지수는 60위, 금전기부 33위, 특히 자원봉사는 96위로 그다지 순위가 높지 않다.
물론 우리가 기부를 잘 하지 않는 배경은 복합적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배경과 기부 확대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부 투명성 제고 및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GDP 규모 증가에 따라 기부에 대한 관심이나 기부규모도 증가하지만 한국은 선진국보다 참여율이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GDP 기부규모는 0.77% 수준으로 미국 2.08% 대비 1/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에 기부 활성화를 위한 추진 배경으로 고령화 등으로 증가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 민간 자원의 활용을 통한 사회적 자본 확충 필요성 증대를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공식적인 복지제도를 통해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민간의 투명한 시스템과 십시일반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보완하겠다라는 말로 풀이될 수 있다. 이는 일면 올해 G20(주요국20개국)에서 내년 세계경제 화두로 표방한 ‘포용적 성장’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포용적 성장의 이면에는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전세계가 직면한 공통 과제가 있다. 이 경제적 불평등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으나 2018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의 쏠림’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경제도 ‘불평등이 매우 심한’ 상태에 해당하기 때문에 비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불평등과 건강이란 독특한 주제로 주목 받아 온 영국의 학자 리처드 월킨슨의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소득 수준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불평등 정도가 더 높은 사회에 사는 구성원일 수록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부가 쏠리는 건지, 부의 편중으로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건지 그 원인 규명과 대책은 필요하나 당장 그 불균형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 십시일반의 적극적인 참여, 즉 다양한 형태의 기부 활성화가 방법이 될 수 있다.
요즘같이 인사이동 및 승진으로 어수선한 인사 시즌만 되면 생각나는 한 기사가 있다. 어느 은행 임원이 승진해서 받은 모든 축하 화분을 싼 가격에 직원들에게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전부 기부했다는 내용이다. 기부가 먼데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오직 필요한 건 약간의 관심과 실천뿐이다. 그리고 기부 후에 내가 느끼는 것은 보람 외에도 우리 사회 불균형을 균형으로 무게의 추를 옮기는데 0.1 정도는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될 터이다.
한번 살면 이제 백 살은 거뜬히 산다는 100세시대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불평등 사회에서 두 손 놓고 있을 것인가, 불균형에 균형을 보태는 작은 방법들을 실천해 볼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기부’이다./지진선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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