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차 이용자가 증가하며 고급휘발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애마(愛馬)의 엔진을 보호하고 연비를 높여주는 고급휘발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정유사들은 2010년 고유가와 함께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고급휘발유 마케팅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고급휘발유 수요는 하루 3,710배럴로 2013년 수요(하루 1,939배럴)의 약 2배 수준으로 늘었다. 보통휘발유 수요가 2013년 하루 20만1,275배럴에서 지난해 22만6,948배럴로 약 12.8% 증가한 것에 비해 급격한 증가율이다. 연간 소비량으로 따져도 고급휘발유는 2016년 88만배럴에서 지난해 135만배럴로 연평균 15.5% 늘어난 반면 보통휘발유는 연평균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급휘발유는 고출력 수입차에 주로 사용된다. 자동차 연료유 시장에서 고급휘발유 수요의 급성장은 국내 수입차 운전자 수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입차 등록대수는 지난 2015년 139만2,035대에서 지난해 241만5,877대로 약 73.6% 늘었다.
2016년 이후 저유가가 계속되고 있는 점도 고급휘발유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젊은 층의 수입차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며 “저유가 지속으로 과거보다는 가격 부담이 덜한 편이라 고급휘발유를 찾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급휘발유는 고출력 수입차에 보통휘발유를 쓸 때 발생할 수 있는 노킹 현상 방지에 탁월하다. 노킹 현상은 휘발유의 이상연소로 엔진룸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노킹 현상이 계속되면 엔진 출력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부품까지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엔진 특성상 일반 차량에서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반 차량에는 보통휘발유를 넣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노킹 현상을 방지해주는 정도인 ‘옥탄가’가 94를 넘으면 고급휘발유로 분류된다. 다만 국내 정유사들은 대부분 옥탄가 97 이상의 고급휘발유를 판매하고 있다. 국내 휘발유의 옥탄가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통상 옥탄가 91~93의 휘발유를 ‘프리미엄’으로 분류한다. 국내에서는 보통휘발유의 옥탄가가 91~94 수준이다.
옥탄가는 노킹 현상을 방지해주는 물질인 ‘이소옥탄’의 함유량에 따라 정해진다. 휘발유에 이소옥탄이 90% 들어 있으면 ‘옥탄가 90’으로 정해지는 식이다. 여기에 국내 정유사들은 이소옥탄보다도 안티노킹 성능이 뛰어난 첨가제를 넣어 옥탄가를 높인다. 옥탄가 100 이상의 고급휘발유가 판매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첨가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급휘발유의 제조 비용이 올라간다”면서 “보통휘발유에 비해 부가세도 높아 리터당 가격이 100~200원 정도 차이 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차량에 고급휘발유를 넣으면 엔진 등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옥탄가 이상의 휘발유를 주입하라고 안내된 차 외에는 고급휘발유를 넣어서 특별히 달라지는 점이 없다”며 “연비가 약간 좋아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봤다.
최근에는 현대오일뱅크가 고급휘발유 브랜드 ‘카젠(KAZEN)’을 재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카젠’의 옥탄가는 100 이상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최대 레이싱 대회인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공식 연료로 선정되며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연말까지 취급점을 현재의 2배인 300개로 확대하고 10%대인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GS(078930)칼텍스도 2006년 고급휘발유 ‘킥스(Kixx) 프라임’을 출시한 이래 옥탄가 100 수준을 유지 중이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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