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3대 증권사 계좌에 1억원 이상 자산을 예치한 고액자산가들이 지난해 3만명 가까이 급증하면서 36만명을 넘어섰다. 저금리에 못 견딘 자산가들이 해외주식 직접투자에 뛰어든데다 베이비부머들의 퇴직연금계좌 적립금이 쌓이고 모바일투자 등 접근성이 개선된 점이 ‘억대 증권계좌’ 증가의 원인으로 풀이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NH투자증권의 잔액 1억원 이상 계좌 보유자가 지난 2019년 말 기준 36만2,07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의 33만3,229명 대비 2만8,850명 증가한 수치다. 2018년에는 전년 말(33만6,178명) 대비 2,949명 감소해 소폭 줄었으나 지난해 크게 늘었다. 국내 대형 증권사 중 이들 세 증권사만 1억원 이상 고객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대우의 ‘부자 고객’ 증가폭이 컸다. 지난 한 해 동안 1억원 자산 보유고객 숫자가 전년(15만1,095명) 대비 1만3,508명 증가해 16만4,603명의 자산가 고객을 보유하게 됐다. 2017년 말 14만7,795명에서 2018년에 3,300명만 늘었던 것에 비하면 1년 새 4배나 급증한 셈이다.
삼성증권도 지난해 말 10만명을 다시 넘어섰다. 2017년에는 10만1,000명이었다가 2018년 말 증시 급락으로 9만6,000명까지 줄었지만 지난해 9,000명의 신규 자산가 고객을 확보하며 10만5,000명의 ‘1억원 이상 계좌’를 보유하게 됐다. 특히 삼성증권은 30억원 이상을 예치한 초부유층 고객 숫자도 지난해 말 1,984명을 기록해 전년(1,784명)보다 200명 늘었다. NH투자증권도 2018년에는 전년 대비 1,249명 줄어든 8만6,134명이었으나 지난해 말에는 6,342명 늘어 총 9만2,476명의 자산가 고객을 유치하며 1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지난해 대형 증권사에 ‘억대 계좌’들이 크게 늘어난 이유로 우선 해외주식 투자 열풍과 퇴직연금의 증가가 꼽힌다. 또 전문직·대기업 종사자 등 고소득층의 젊은 고객들이 모바일을 통해 직접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1%대에 불과한 은행 예금 이자에 못 견딘 자산가들이 수익률이 좋은 해외주식 투자에 관심을 돌리면서 많은 자금을 예치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게다가 투자수익률이 좋아 자산의 평가액도 늘고 추가로 자금을 넣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해외주식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7조6,000억원(전년 대비 2조8,000억원 증가), 삼성증권은 3조9,000억원(전년 대비 1조3,000억원 증가)을 기록했다.
퇴직연금도 고액 증권계좌 증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은 확정기여형(DC)과 같은 개인 퇴직연금계좌에 억대의 자금이 쌓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지난해 1억원 이상 계좌 보유 신규 고객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이 86%, 60대 이상이 51%였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DC형을 채택한 공기업, 대기업, 외국계 기업 등에서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은 그동안 쌓인 자산이 수억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고객들은 은행의 시중금리보다는 약간 높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주는 연금상품, 해외 배당주 등에 대한 니즈가 높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DC형 퇴직연금이 3조5,000억원, 개인연금계좌(IRP)는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젊은 부자’들의 모바일 주식투자 증가도 억대 계좌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늘어난 1억원 이상 고객 중 약 75%가 디지털 채널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분석됐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취득한 정보로 무장한 30~40대 젊은 고소득층 고객들이 거래 수수료가 싼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틈틈이 주식투자로 자산을 불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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