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병원비 유동화 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들이 만기 상환에 잇따라 실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탈리아를 덮치면서 채무자인 지방정부가 제때 상환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증권 업계에 따르면 130억원 규모인 ‘JB유럽헬스케어전문사모펀드 1호’가 지난달 28일 만기 상환에 실패하고 1년 만기 연장을 투자자들에게 통보했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이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 산하 지역보건관리기구(ASL)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한다. 2년 만기였던 이 펀드는 최근 지방정부들이 채권 상환 연기를 요청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만기에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판매사는 연 5% 이상의 수익률이 예상된다고 설명하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진료비를 정부기관에 청구한다. 국내 병원들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비급여 항목을 제외한 급여 의료비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약 한 달 내로 지급하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은 지방정부 재정 상황이 달라 보험료 지급에 국가별로 60~170일이 소요된다. 이탈리아는 보통 170일이 걸린다. 이에 따라 현지 운용사들이 병원들로부터 채권을 할인 매입하고 이를 지방정부로터 상환받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국내 운용사들이 이를 들여와 사모펀드로 만들어 판매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문제가 악화되면서 매출채권이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이탈리아 의료비 유동화채권펀드 잔액이 약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DB자산운용은 지난 2017년 말까지 같은 형태의 펀드 총 680억원어치를 하나은행 등을 통해 판매했다. 이 가운데 225억원은 지난해 조기상환이 됐으나 5개 펀드 325억원은 지난해 말부터 만기가 지났음에도 투자자들에게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또 1개 펀드 130억원은 오는 7월 만기가 예정돼 있다. 이외에도 JB자산운용·라임운용 등이 유사한 펀드를 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 측은 현재 원금손실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DB운용의 한 관계자는 “채무자가 정부기관이므로 디폴트 우려는 낮다”며 “다만 코로나여파로 채권 추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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