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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지는 '코스피 저PBR'..."저평가 아닌 산업경쟁력 문제"

[12개월 선행 PBR 0.75배...2년째 1배 밑돌아]

아직 2008년 금융위기때 0.7배 수준

철강·유통·금융 등 경쟁력 낮아진데다

IT 등 신산업 비중 높지 않기 때문

코로나 탓 수익 저조에 ROE도 줄듯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보유한 순자산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이후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BPS)으로 나눈 것으로, 이 비율이 1배보다 적으면 주가가 회사가 보유한 자본의 장부상 가치보다 저평가돼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PBR이 1배를 밑돌면 저평가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스피의 PBR이 지속적으로 낮은 이유가 단순한 증시 저평가 보다 철강·기계·금융·유틸리티 등 전통 산업의 경쟁력 하락이나 정부 규제와 같은 ‘구조적’ 요인과 관련이 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PBR은 0.75배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PBR은 지난 2018년 6월13일 이후 2년 가량 꾸준히 1배를 밑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증시가 급락했던 지난 3월23일 당시 0.59배까지 떨어졌을 때보다는 다소 회복됐지만 여전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인 0.7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의 PBR이 계속 낮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와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PBR은 자기자본이익률(ROE)과 관련이 깊다. ROE는 기업이 보유한 자본에서 순이익이 얼마나 나오는지 나타내는, 즉 자본생산성이 얼마나 좋은지 표현하는 지표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경우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 등 신산업 부문보다는 조선·철강·보험·기계 등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 부문의 점유율이 커 구조적으로 자기자본 대비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나마 기존에 황금기를 구가하던 제조 대기업들도 주도권을 중국 등에 내주면서 ROE도 줄어들고 시장에서 평가받는 순자산의 가치, PBR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은 순자산을 비교적 크게 가져가지 않는 IT 플랫폼 기업이 높은 ROE를 이끌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 기성 기업 중엔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중국 등과의) 가격 경쟁에도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낮은 PBR이 우리나라 산업구조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PBR이 낮게 책정된 기업 중엔 기존 제조·유통 대기업이 많다. 가령 12개월 선행 PBR이 0.15배 수준인 현대제철의 경우 올해 3월 말 보유 자본이 16조원에 달한다. 현대제철은 1년 전인 지난해 5월에도 PBR이 0.32배 수준이었다. 올해 코로나19로 철강업계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주식시장에서 계속 저평가를 받아왔다는 의미다. 자본총계가 12조원에 달하는 롯데쇼핑은 12개월 선행 PBR이 지난해 5월 0.40배에서 0.24배로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수익을 쌓아두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ROE가 올라가지 못하고 PBR도 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제통화기구(IMF)발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 사이에선 ‘부채를 쓰지 말고 자기자본을 늘리는 게 좋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ROE가 오르려면 수익이 증가하거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통해 자기자본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돈을 벌면 사내에 유보하려는 경향이 강해 ROE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금융업종이나 유틸리티 산업 등 정부 규제의 영향을 받는 업종에서도 저PBR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가령 신한지주의 PBR은 0.33배, 한국전력과 삼성생명은 각각 0.22배, 0.23배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금융업종의 경우 당국에서 영업용 순자본비율 규제를 요구하다 보니 기업들이 자기자본을 계속 늘리고 수익성은 자꾸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유틸리티 산업의 경우에도 정부가 가격 결정권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국내 기성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코스피의 ROE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개월 선행 PBR은 떨어지는 반면 12개월 선행 주가이익비율(PER)이 늘어나는 게 대표적이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14일 기준 11.27로 코스피가 2,100~2,200선을 왕복하던 지난 1~2월과 비슷하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이익 전망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올해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 하향이 끝나지 않으면 ROE 전망 역시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ROE는 PBR을 PER로 나눈 값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추산한 코스피 ROE 추정치는 6.65%로 지난해 12월말 기준(7.42%)은 물론이고 2018년말(9.32%)보다도 낮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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