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원화 커버드본드(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 발행이 다시 가동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한동안 주춤했지만 금리 리스크를 대비한 ‘실탄’ 확보가 절실해지면서 발행시장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유예된 신예대율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도 커버드본드 발행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커버드본드로 조달한 자금을 예수금의 1%까지 인정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한번에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달하는 정기예금을 유치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커버드본드를 발행해 예수금 관리의 비상구를 만들어놓겠다는 계산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발행된 시중은행의 커버드본드는 현재까지 3조9,200억원이 발행됐다. KB국민은행이 2조1,200억원으로 최선두에 있고, SC제일은행(8,000억원), 우리은행(5,000억원), 신한은행(5,000억원) 순이다. 올해 들어 한 차례도 발행되지 않았지만 최근 우리은행이 2,000억원 규모로 5년물 커버드본드 발행에 성공하면서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금리수준은 1.44%로 은행채 5년물 민평금리보다 0.02%가량을 절감했다. 발행규모를 넘어서는 수요가 몰려 시장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채권 발행시장이 불안정해지자 발행계획을 미뤘던 SC제일은행과 수협은행도 각각 5,000억원, 3,000억원가량의 커버드본드 발행에 나설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커버드본드 관련 기초자산집합 평가총액을 3조5,375억원에서 7조5,067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커버드본드가 은행 등 금융사가 주택담보대출, 국·공채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초자산집합 평가총액의 상향은 은행이 담보로 하는 자산을 늘린 것으로 커버드본드 추가 발행에 대한 시그널이다.
이처럼 은행권의 커버드본드 발행 재개 배경에는 폭증하는 가계대출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4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579조5,536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3,779억원 늘어났다. 올해 1~3월 가계대출 월간 증가폭이 1조~2조5,000억원 사이였던 점과 비교해 증가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정기예금 잔액은 649조6,198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7,079억원 감소했다.
신예대율은 대출금이 예수금의 100%를 넘으면 영업에 제한을 받는다. 신예대율 규제는 가계대출 가중치를 15% 올리고, 기업대출 가중치를 15% 내린다. 예대율 상한선에 다다른 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확대하거나, 예수금을 늘려야 하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정반대 상황이 되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아울러 코로나19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정책 대응으로 채권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은행채 금리가 낮아져 조달금리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예대율 유예가 한시적이라는 점에서 대출 폭증을 지켜볼 수는 없는 처지”라며 “초저금리 상황에서 예금이탈까지 더욱 커질 수 있어 커버드본드 발행이 대응카드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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