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대기업 달랑 1곳 돌아와 |
미국은 370억달러(약 45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반도체 기업에 지원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고 일본은 유턴기업에 2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14년 이후 현대모비스가 유일
경제 효과 큰데 대기업 지원 적어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턴법이 시행된 지난 201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유턴기업은 총 71개에 그쳤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 62개, 중견기업 8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기업은 지난해 8월 울산에 친환경차부품 공장을 신설한 현대모비스가 유일하다.
대기업 유턴이 이처럼 ‘가뭄’ 상태를 지속하면 국내 유턴 제도의 실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실제 국내에 유턴한 기업의 경우 주얼리(13개), 전자(12개), 자동차(10개), 신발(7개) 등 전자와 자동차 일부를 제외하고 노동집약적 업종에 치우쳐 있다. 해외는 딴판이다. ‘유턴 모범생’으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제너럴일렉트릭(2012년), GM(2014년) 등 기술집약 업종 대기업이 귀향했고 일본도 도요타(2015·2017년), 닛산(2017년) 등이 유턴을 결정했다.
OEM, 국내로 돌려도 유턴 인정 등
‘리쇼어링 당근책’ 마련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대기업 유턴을 촉진하기 위해 위탁생산 일부를 국내 업체에 돌려도 유턴으로 인정하는 등 전향적인 유인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위탁생산(아웃소싱) 물량 일부를 국내로 돌리기만 해도 유턴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적 유연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국내 유턴을 가로막았던 노동경직성, 수도권 입지 등 ‘암반규제’도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조금 확대는 대기업을 유인하기에 부족하다”며 “기업 경영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 1곳만 유턴해도 일자리 3만개 생기는데 |
실제 대기업 유턴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 7년 동안 71개 기업이 돌아오는 데 그칠 정도로 부진한 유턴 실적을 만회할 가장 큰 ‘한 방’으로 평가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연매출 1위(258억달러·2018년 기준)인 베트남 제2공장의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 생산량을 국내로 25%만 돌릴 경우 총 12조7,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또 3만5,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유턴 비율을 50%로 확대하면 생산과 고용유발 효과는 각각 25조5,000억원, 7만1,000명으로 2배로 늘어난다. 유턴이 중견·중소기업에 그칠 때보다 경제적인 효과가 증대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같은 전기·전자뿐 아니라 자동차·전기장비·1차금속·화학 등 주로 대기업이 영위하는 업종의 경제 효과가 큰 편이다. 국내 제조기업이 생산량의 5.6%를 유턴한다고 가정할 경우 자동차 4만2,694명, 전기전자 3만1,664명, 전기장비 1만497명, 화학 6,529명 등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각각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협력사 무더기로 몰고 올 수 있어 고용·생산효과 막대
최저임금·주52시간 등 걸림돌 많아 기업들 복귀 꺼려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암반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정부도 이를 고려해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제지원 기준인 해외 사업장 감축요건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생산량의 25%’로 정한 유턴 인정기준을 없애고 생산량을 줄인 만큼 비례해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인정 범위를 더욱 유연하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대기업은 유턴에 대해 ‘글로벌 경영을 축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생산설비를 국내에 신·증설한 것 외에 국내 업체에 아웃소싱을 준 경우에도 유턴으로 인정하는 등 과감하게 허들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문가들은 노동비용 절감은 대기업뿐 아니라 전반적인 유턴 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건비 절감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은 한 해 평균 2.5% 증가했다. 단위노동비용은 상품 1단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비용으로, 이것이 증가했다는 것은 제조원가 경쟁력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반면 국내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중국·미국·브라질·인도·멕시코·오스트리아·일본·폴란드·싱가포르·독일 등 10개국의 평균 단위노동비용은 같은 기간 오히려 0.8% 감소했다. 독일(-2.7%)·일본(-3.8%) 등 선진국에서도 단위노동비용 감소가 뚜렷했다. 한국의 노동비용이 큰 데는 낮은 노동유연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규제 강화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노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기업일수록 노조가 크다 보니 노사분규가 제일 문제”라며 “노사분규가 안정되지 않고는 기업들이 돌아오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 필요성도 높게 지적된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으로 유턴한 기업에 최대 15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지방으로 유턴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줬지만 수도권과 지방 입주기업에 대한 정책 차별을 일부 완화한 것이다. 또 수도권 공장총량제 범위 내에서 유턴 기업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도권 유턴 활성화를 위해 공장총량제 자체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에 ‘유턴 선물’ 쏟아내는 각국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자 각국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 든 카드는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이었다. 국내 일자리 창출과 핵심산업 보호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으로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美, 국내 생산 조건으로 자국 제약업체와 계약
日, 리쇼어링 추진 기업에 20조원대 보조금 지원
리쇼어링을 가장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곳은 미국이다. 코로나19 기원 등을 놓고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된 미국은 ‘탈중국’이라는 정치적인 명분까지 내세워 자국 기업 소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모임인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중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370억달러(약 45조5,840억원) 규모의 보조금 정책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해 SIA 제안 중 일부를 반영한 법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미국이 코로나19 치료용 복제약(제네릭 의약품)과 의약품 원료를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조건으로 자국 제약 업체인 플로(Phlow Corp)와 3억5,400만달러 상당의 계약도 체결했다. 계약은 10년 연장될 수 있고 연장 시 계약 규모는 8억1,200만달러에 이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이는 미 보건복지부(HHS)가 맺은 계약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이 계약에 대해 NYT에 “의약품 생산 및 공급망을 국내로 들여오려는 미국의 노력에 있어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평했다.
마크롱 “프랑스에서 더 많은 것 생산해야”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경제 악영향 목소리도
코로나19로 공급망 재편에 나선 일본 역시 지난 4월 자국으로 돌아온 기업에 2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 최근 400여개의 일본 기업이 리쇼어링에 협조하기로 했다. 유럽에서 보수적인 색채가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리쇼어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부가 코로나19에 영향을 받는 기업에 수십억유로를 지급하고 부족한 마스크 생산을 늘리는 방안에 힘을 싣고 있다.
코로나19로 리쇼어링 움직임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국 기업의 유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생산시설 이전은 비용과 시간이 들 뿐 아니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조양준·김우보·박성규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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