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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HDC현산, 아시아나 몸값 낮추기

HDC "기업가치 계약 당시와 달라졌다"

지난달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멈춰서 있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이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협상하자고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이 계약시점에 비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유리한 인수조건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와 인수포기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9일 HDC현산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재검토 입장문을 산업은행에 전달했다. 앞서 산은이 2주 전 “오는 27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혀야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고 최후통첩한 데 대한 회신 성격이다. HDC현산은 “아시아나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으나 입장문의 내용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악화와 협상 태도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HDC현산은 “계약 체결 이후 불과 5개월 사이 아시아나항공 부채가 무려 4조5,000억원 증가하고 부채비율이 지난해 6월 말 대비 1만6,126% 급증하는 등 재무상태가 악화했다”며 “1·4분기 말 현재 자본총계도 지난해 6월 말보다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시아나항공이 4월 현산 컨소시엄에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및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정관 변경, 임시 주주총회 개최 계획 등을 통보했지만 사전동의 없이 이사회를 열어 이를 승인하고 부실 계열사에 1,400억원 지원을 통보한 것도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항공산업 침체에도 HDC현산은 일관되게 강한 인수 의지를 피력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되며 아시아나항공 주식취득일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어 한 달여 만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 원점 재검토까지 요구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조건 원점 재협의 요구에 따라 HDC현산과 채권단은 아시아나 차입금 상환 만기 연장, 금호 측에 주기로 한 아시아나 주식(구주) 가격 인하, 5,000억원의 영구채 출자전환 등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 인수 의지는 변함없지만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구한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조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인수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가격인 2조5,000억원에 비해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크기 떨어진 만큼 인수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HDC현산의 시각이다.

HDC현산은 입장문을 통해 크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가 현재의 재무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는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의 상황에도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계약을 연장할 경우에도 협상 파트너는 금호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HDC현산이 지적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 상황은 인수가격과 직결되는 문제다. HDC현산은 주식매매계약(SPA) 기준일인 지난해 6월 말 대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HDC현산은 이를 넘어 감사보고서 등에 나타난 현재의 경영상태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HDC현산은 “부채비율은 1·4분기 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으며 자본 총계는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외부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표명함에 따라 이번 계약상 기준인 재무제표의 신뢰성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HDC현산은 인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추가 차입과 정관 변경, 계열사에 대한 지원 등 중요한 재무적 변화를 아시아나항공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채비율과 자본상황이 악화됐고 재무적 변화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결국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산의 주장은 결국 기업가치가 계약 당시에 비해 달라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면서 “인수 의지 자체를 번복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HDC현산은 지난해 말 SPA 체결 당시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사고, 2조1,771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만큼 HDC현산은 구주 가격 하락, 유상증자 발행가액 조정 등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또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한 대출금의 만기 연장, 영구채 5,000억원의 출자전환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 파트너도 변경 요청
HDC현산이 계약을 연장할 경우 협상 파트너는 금호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어야 한다고 요청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HDC현산 측은 입장문에서 “인수계약에 관한 논의가 계약 당사자들에 국한된 범위를 넘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의, 대승적 차원의 실질적 논의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계약 연장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채권단이 최근 HDC현산에 오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밝히라고 압박했던 것에 대한 입장표명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채권단과 합의하면 인수 마감시기를 6개월 연장해 올해 말까지 늦출 수 있다는 계약서상의 조항을 활용하기 위해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시한을 일단 올해 말로 미룬 상태에서 협상과 자금조달 등의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 개선 여부와 HDC현산의 인수 의지가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매각의 핵심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양한 변수들도 산재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상반기 말 회계의 기준이 되는 6월 말까지 영구채를 투입해 부채비율을 낮추지 않을 경우 항공기 리스, 자산유동화증권(ABS), 회사채 등에서 조기 회수 트리거가 대거 발동될 수 있다. 게다가 HDC현산과 컨소시엄을 꾸렸던 미래에셋대우가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완전자본잠식을 눈앞에 둔 부실기업인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향후 경영여건도 좋지 않은 만큼 재무적투자자(FI)로 돈을 쏟아붓기 어려운 상황라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셋대우가 이탈한다면 HDC현산은 최소 5,000억원의 금액을 추가로 조달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매각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채권단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만큼 추가적인 자금투입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재매각을 진행하거나 분리매각 등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박윤선·박시진·이태규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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