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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주먹구구식 재정살포...급하다며 졸속·밀실 처리

[추경만능주의의 민낯]

재정절벽 심각...정작 경기보강 필요할 때 쓸 카드 없어

타간 돈도 못 쓴 부처들도 앞다퉈 예산 따내기만 혈안

건전성 걱정하는 사령탑 홍남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지난 6월 정부는 24조원의 빚을 내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원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경을 놓고 번번이 속전속결을 강조했지만 정작 부처들은 돈을 타간 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강한 요구로 급조된 후 졸속 심사한 데 따른 결과물인 셈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돈을 쓴다고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며 “사실 3차 추경에서 너무 무리할 필요가 없었는데 정부가 조급했다”고 꼬집었다.

◇번번이 졸속 처리=올해 처리된 추경을 보면 예산결산위원회 상정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1차 추경은 7일, 2차 추경은 역대 최단 기간인 3일이면 충분했다. 전체 국회 심의 기간은 2주일 정도였다. 3차 추경 역시 국회 심사 기간이 나흘에 불과해 시작부터 부실 추경 우려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후 단 이틀 만에 예비심사를 모두 끝냈고 대부분 2시간을 넘기지 않는 벼락치기였다. 국회 심의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 것은 지출 효율성이 떨어진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299개에 달하는 3차 추경 세부사업은 꼼꼼하게 효율성을 따져야 함에도 급하다는 이유로 밀실에서 추진됐다. 한국판 뉴딜과 공공일자리에 대한 현미경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176석의 거대 여당이 밀어붙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판 뉴딜과 고용안전망 사업 등을 콕 찍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의 보완을 주문하기도 했다. 단기일자리 사업이 많이 들어가 있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재정집행 상황을 확인하는 재정관리점검회의도 지난 7월31일 이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성급하게 내놓은 소비쿠폰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들어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부처 돈 타기에 혈안=각 부처는 돈은 타갔지만 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을 최소화하겠다며 추경으로 1조2,060억원을 받아간 ‘희망근로사업’의 예산 집행률은 두 달 동안 9.8%에 불과했다. 고용안정을 위한 일자리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것이다. 애초에 이 사업은 예정처가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과 중복된다”며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그린뉴딜’을 강조하며 딴 중소벤처기업부의 사업 역시 무더기로 집행률 0%를 기록했다. 중기부는 기업 8만곳에 비대면 서비스 플랫폼 구축을 지원하겠다며 3,114억원을 받아갔지만 두 달간 실제 집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예정처는 이 사업에 대해 “기업 8만곳의 수요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방부가 첨단과학교육훈련을 한다며 수백억원을 받아갔지만 대부분의 세부사업은 아예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코로나19와 큰 관계도 없는 ‘해외야생동물 관리 강화’ 사업에 51억원을 받았지만 집행률은 0%다. 이 역시 예정처에서 재검토 권고를 받았다. 백미는 전 세계가 셧다운된 와중에 ‘K방역’을 해외에 널리 퍼뜨리겠다고 받은 ‘K방역해외조달시장 진출 지원(약 14억원)’ 사업이다. 당시 “국제행사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대로 반영됐고 결국 돈은 집행되지도 못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추경을 빨리 집행해야 한다며 늘 속도를 강조하더니 특별한 아이템도 없고 집행률도 낮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며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는지 따져보는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매년 습관성 추경=위기 조짐만 보여도 추경 카드를 꺼내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3월 미세먼지에 여론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추경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는 재정집행이 막 시작되는 1·4분기임에도 추경 편성 작업에 돌입해 4월 6조7,000억원 규모의 ‘미세먼지 저감 및 민생경제 긴급 지원’ 추경안을 마련했다. 너무 이른 추경은 하반기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재정절벽의 위기에서 정작 경기보강이 필요한 시점에는 쓸 카드가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경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집권 첫해인 2017년 일자리 추경(11조2,000억원)을 편성한 데 이어 2018년 청년일자리 추경(3조8,000억원), 2019년 미세먼지 및 경기대응 추경(5조8,000억원)을 단행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59년 만에 67조원에 달하는 추경을 추진한다. 1차 추경(11조7,000억원)의 돈이 채 풀리기도 전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이 거론됐고 2차 추경 발표와 동시에 3차 추경이 공론화됐다. 이러다가는 4차 추경이 확정되며 코로나19 5차 추경까지 거론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4차 추경 추진 과정에서 경제 컨트롤타워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당의 요구와 대통령의 지시로 추경 작업이 시작됐고 4차 추경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전면에 나섰다. 홍 경제부총리는 추경을 공식화할 때마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 방어에 나섰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번번이 끌려갔다. /구경우기자 세종=박효정·황정원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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