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주택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후 임대인이 주택 임대 사업자 등록을 했다면 이후 갱신 계약은 ‘최초 계약’이 돼 ‘전·월세 상한 5%’를 초과하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고 잇따라 조정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이런 경우에도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임대 사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해온 이른바 ‘최초 임대료’ 논란에서 사법부가 연이어 임대 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존 유권해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이은 판결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임대 사업자들이 대거 줄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여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5% 초과 임대료 인정’ 법원 결정 잇따라=20일 대한주택임대사업자협회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19일 전세 보증금 인상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집주인인 임대 사업자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 씨가 요구한 대로 3억 원의 전세 보증금을 인상해 재계약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5% 인상’을 주장한 세입자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의 한 아파트를 보유한 A 씨는 지난 2018년 12월 세입자 B 씨와 5억 원에 전세 계약을 맺은 뒤 이듬해 1월 임대 사업자로 등록했다. 지난해 12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 A 씨는 껑충 뛴 주변 시세에 맞춰 3억 원을 인상한 8억 원에 재계약을 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A 씨는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갱신 계약 시 인상 상한액인 2,500만 원(5%)만 올려줄 수 있다며 거절했고 A 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임대 사업자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요구 전액이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5% 상한을 초과한 임대료 인상을 법원이 인정한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협회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 사업자가 비슷한 사연으로 제기한 또 다른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21%의 임대료를 인상해 재계약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요구했던 25% 인상보다는 소폭 낮아졌지만 ‘5% 상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소송을 대리한 협회 측 김성호 변호사는 “최초 임대료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해석한 ‘5% 초과 금지’를 법원에서 무효라고 해석한 것”이라며 “법원 결정 소식이 전해진 뒤 다른 임대 사업자들의 소송 문의가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임대 사업자는 “정부의 잘못된 해석을 믿고 5% 상한액으로 재계약을 했는데 이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살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 법 해석에 ‘반발’ 더 커져=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기존 ‘민간임대주택특별법’과 정부가 개정한 ‘임대차보호법’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민간임대주택특별법에는 2019년 10월 23일 이전에 등록한 임대 사업자는 등록 당시 존속 중인 임대차 계약이 있으면 그 임대차 계약의 종료 후 재계약 시 적용되는 최초 임대료를 임대 사업자가 임의대로 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같은 경우 계약 갱신 때 ‘5% 룰’을 적용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말부터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 갱신청구권을 사용할 경우 임대료 인상 폭을 5% 이내로 정했다. 임대 사업자의 경우 최초 계약이기도, 갱신 계약이기도 한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대 사업자들은 특별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8월 ‘주택임대차보호법 해설집’을 통해 “민특법상 임차인이라고 하더라도 주임법상의 계약 갱신청구권이 배제되지 않고 있다”며 “임차인이 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면 주임법에 따라 임대료 인상률 상한 5%가 적용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차인 보호만을 위해 무리한 법 해석을 한 탓에 이 같은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형식적 논리로 기존에 인정했던 권리를 소급해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며 “위헌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기존 법률 해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상황이 아니고 법제처에서도 행정부의 유권해석과 동일하게 판단한 만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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