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뒤처진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력이 있는 만큼 정부 정책 변화가 있다면 빠르게 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우택 한국투자신탁운용 매니저는 1조 3,000억 원에 육박하는 한국투자글로벌전기차&배터리펀드를 3년 8개월간 운용해온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전문가다. 지난 2017년 10월 출시된 이 펀드는 국내 운용사가 운용하는 해외 주식형 펀드 중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펀드의 경우 순자산 기준 2조 9,761억 원으로 1위이고, AB미국그로스펀드가 1조 5,499억 원으로 2위다. 한국투자글로벌전기차&배터리펀드가 1조 2,749억 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제는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공유차·수소차 등 미래 모빌리티 영역으로 확대됐다. 수익률도 지난 1년간 69.3%, 2년간 109.7%를 기록했다.
최근 황 매니저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도요타를 위시한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이다. 지금은 미국·중국·한국 등의 전기차 관련 업체에 뒤처져 있지만 자동차 제조 관련 저력이 있는 만큼 정부 정책에 변화가 있다면 무서운 추격자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글로벌 흐름에 뒤처졌던 일본의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관련 정책이 바뀔 수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일본에는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부품사 중에서 기술력을 갖춘 중요한 회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 부품을 쌓아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실적 호조로 전기차 정책의 수혜를 받게 되면 또 다른 성장 스토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흔들리고 있는 ‘테슬라’에 대해서는 “일론 머스크의 입이 아니라 픽업트럭이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황 매니저는 “과거 테슬라의 위기는 생산 능력과 관련한 회사의 존폐 문제였다”며 “그러나 지금 회사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이슈들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는 브랜드 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한번 올라온 브랜드는 공고하게 유지된다고 봤다.
그는 “테슬라가 1세대 전기차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을 제대로 내놓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는 2019년 사이버트럭을 공개하고 올해 판매한다고 예고했지만 출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펀드에서도 테슬라의 비중이 대폭 줄었다. 황 매니저는 “한때 공모 펀드가 담을 수 있는 종목당 최대치인 10%까지 테슬라 비중을 끌어올린 적도 있었다”며 “지금은 3%대까지 낮췄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결국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느냐를 확인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 혁신의 중심은 픽업트럭인 셈이다.
같은 전기차·배터리 테마 펀드라도 상장지수펀드(ETF)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비중을 조정하는 것이 이 펀드의 장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테슬라·LG화학·삼성SDI·CATL·니오 등의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포트폴리오를 조정했다. 황 매니저는 “1월부터 전기차·배터리 등 친환경 관련 주들이 무섭게 올랐는데 과도한 주가로 생각했다”며 “그러면서 테슬라·니오·SK이노베이션 등의 비중을 좀 줄이고 기존 완성차 업체 중에서 전기차를 잘할 수 있는 회사와 차량용 반도체 회사들의 비중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위 10개 종목 중에는 GM·폭스바겐 등 전통차 업체와 NXP·인텔·삼성전자·인피니온 등의 반도체 기업이 포진해 있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 조정 덕에 지난 2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종목들이 큰 조정을 받을 때 펀드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었다.
한국의 배터리 업체가 중국의 CATL에 비해 밸류에이션을 낮게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내수 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황 매니저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수 시장이 작아 한계가 있다”며 “CATL의 경우 세계 1위의 확고한 전기차 시장이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을 높게 받을 수밖에 없다. 펀드에서도 비중을 줄이지 않는 핵심 종목”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주가도 무너지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단, 올해 금리가 상승세를 타면서 기술주들이 가치주에 비해 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점은 투자자들이 고려할 점이다. 황 매니저는 “펀드의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보통은 70~80개 종목을 담지만 지금은 120개 정도를 투자한다”며 “지속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액티브 펀드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의 성장성은 장기적으로 꾸준하기 때문에 장기 분산 투자에 적합한 테마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침투율은 3% 선밖에 안 된다”며 “자율주행차까지 맞물린 전기차 테마는 장기 투자에 적합한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이혜진 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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