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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해운업 붕괴가 두렵지 않은 산은·공정위

HMM 육·해상 노조 중노위 조정 돌입

실제 파업 이어지면 코로나보다 더 큰 충격

HMM 인력 이탈 심각해 처우 개선 시급

공정위도 예외 규정 두고도 과징금 강행

뒷북경제




“임시 선박을 투입할 때가 아니라 HMM 파업부터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가뜩이나 전 세계 공급망이 꼬여있는데 HMM 노조가 진짜 파업이라도 하면 그다음 일은 상상도 하기 싫네요.”

지난 12일 해양수산부가 임시 선박 13척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국내 한 컨테이너 선사의 영업담당 직원은 정부가 무엇이 더 급한지 모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보다 HMM 파업이 국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데 임시방편만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돌발변수는 우리 정부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나마 HMM 파업만은 막을 수 있지 않냐는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해운·물류 대란이 1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임금·단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HMM 파업에 대한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 현재 HMM의 육상노조와 해상노조는 각각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쟁의 조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정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두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HMM에서 파업이 발생한다면 1976년 창사 이래 처음입니다.

노조는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200% 지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측은 임금 5.5% 인상과 월 급여 100% 격려금을 주겠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 입장을 쉽게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노조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습니다. 회사 측도 강경합니다. 정확히는 사측과 임단협에 대해 사전협의를 하고 있는 산업은행 등 대주주의 입장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HMM 파업이 단순한 사내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내 수출입 물류를 도맡고 있는 최대 선사인 HMM이 단 하루라도 파업하면 정기 컨테이너선이라는 업종 특성상 전 세계 물류망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HMM과 공동 노선을 운영 중인 동맹 소속 선사는 물론이고 HMM 선박이 입항하는 전 세계 항만 일정도 꼬이게 됩니다. 이는 이미 2016년 한진해운 사태 때 직접 목격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국내 수출은 마비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HMM 노조는 역설적으로 파업만은 가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자신들의 파업이 전 세계 공급망에 끼칠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 산은은 오히려 파업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노조 요구가 과할 뿐 아니라 채권단 관리 기업에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내부 원칙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안을 내놓는 등 대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부 컨설팅을 통해 11.8%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 놓고도 5.5%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HMM 로테르담호 위에서 선원들이 피켓을 들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제공=HMM 해원연합노동조합


해운업계에서는 최소한의 처우 개선은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HMM이 아닌 다른 선사 직원들마저 HMM 노조 입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HMM 육상직원과 해상직원은 각각 8년, 6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다가 최근에서야 소폭 인상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외국 선사는 물론이고 국내 선사와의 임금 격차도 연봉 기준 2,000만 원 수준까지 크게 벌어졌습니다.

임금 격차로 인한 HMM 인력 이탈은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경쟁사로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업종을 바꾸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최근엔 대놓고 HMM 직원을 노리는 채용 공고까지 나옵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인도가 본격화되는 2~3년 뒤엔 인력 쟁탈전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정부가 HMM 선복량 확대 등으로 해운 재건을 한다지만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뒤 빈 배만 떠안을 위기입니다. 정부가 투입하기로 한 임시선박은 누가 타냐는 말까지 나옵니다.



하지만 정부조차 어쩔 방도는 없어 보입니다. HMM 임단협은 노사 간 자율교섭으로 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산은과 HMM 노조가 서로 양보해야 하는데 노조는 이미 수년간 임금 동결을 감수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에도 사측 안을 받아들인 만큼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해운업을 위협하는 또 다른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입니다. 공정위가 동남아 노선에서 운임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국내외 선사 23곳에 과징금 약 8,000억 원을 부과하기로 한 것입니다. 과징금을 내려면 국내 중소선사들은 가지고 있는 배를 모두 팔아야 합니다. 공정위에 담합이 의심된다며 신고했던 단체가 자진 철회했는데도 과징금 부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해운법에서는 선사 간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선사가 무분별한 공급으로 운임을 떨어뜨려 시장이 무너지면 화주들에게 더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선사 간 합의로 적정 가격에 해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수출 무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공동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라는 공정거래법 58조에서도 인정하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몇 가지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며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해운법상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정당한 행위이든 아니든 해운법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처리하자는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산은과 공정위 두 조직 모두 내세우는 것은 원칙입니다. 채권단 관리 기업에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담합을 막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 두 조직은 원칙만 지키면 끝나는 일이겠지만 해운업이 입게 될 피해는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해운업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 필요한 순간인 것입니다.

한진해운 사태로 전 세계적인 물류 대란이 발생하고 수출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불과 5년 전 일입니다. 지금도 외국 선사들은 한국을 건너뛰고 물량이 많은 중국 항만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끝에 겨우 살아난 HMM이 매월 임시 선박을 투입하지 않고, SM그룹이 한진해운 미주노선이라도 인수해 SM상선을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요. 한국 화주들은 웃돈을 주고도 화물을 실어 나를 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운업을 무너뜨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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