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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일감 몰아주기 규제' 코앞…600여곳 헐값에 팔릴 판

■ 4개월 남은 데드라인…기업 '초비상'

GS·신세계·LS 등 15대 기업들

대상 늘며 정리못한 계열사 넘쳐

사모펀드 등 지분 인수에 소극적

짧은 시간내 매각 쉽지 않을 듯





기업들이 한층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시행을 4개월 앞두고 계열사를 정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규제 대상 확대로 지분을 팔거나 아예 매각해야 할 계열사 수가 15대 대기업에서만 세 자릿수다. 짧은 시간에 매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더욱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이 지원군으로 나서 소수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봤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기업들로서는 헐값에 팔거나 과징금을 내며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 대상 60대 기업이 연말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지분을 팔거나 정리해야 할 계열사는 600여 곳이나 된다. 규제 강화 전(150여곳)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 되는 상장사, 20% 이상인 비상장사에 부당 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12월 30일부터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 20% 이상, 이들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로 규제 대상이 확대된다. 기업별로 보면 GS그룹이 34곳으로 가장 많고 신세계(20곳), LS(17곳), SK(14곳), 삼성(11곳), 현대차·한진(10곳) 등이다.

공정위는 “부당한 내부 거래만 엄격히 골라 사후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관련 우려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사전적으로 총수 일가 지분을 20% 미만으로 줄이거나, 관련 계열사를 팔거나 지분을 50% 이하로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기업의 지분 등을 매각하기도 했다.

문제는 관련 지분을 사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는 “시한은 정해져 있고 경영권을 가져올 수 없는 소수 지분 거래가 많아 매수자 우위 시장”이라고 말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면 과징금은 물론 검찰 고발, 기업 망신 주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규제 시행 유예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분 매각까지 최소 6개월…"과징금 내고 버틸 수밖에 없어"

['일감 규제' 코앞 기업 초비상]

10대 재벌가 24조 내부거래, 연말부터 감시 대상

지배구조 개편·블록딜 카드 있지만 작업 쉽잖아

조사 기준도 모호…유예 기간 연장 등 대책 필요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6.71%)까지 포함하면 29.9%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상장사는 총수 일가가 지분 30% 미만을 보유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는 12월 30일부터는 20% 이상 보유할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총수 일가의 지분을 10%포인트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글로비스는 차량 수송 등에서 현대차와 기아 등 그룹 내부 거래가 매출 비중의 60%를 차지한다. 핵심 계열사인 것이다. 결국 바뀐 법에 맞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나 지분 일부를 사모펀드(PEF)로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등에 파는 카드가 있지만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장고가 이어지는 이유다.



◇시행 코앞이지만 대기업들 “고민 중”=현대차그룹뿐 아니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한층 강화된 공정거래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달라진 규정에 따라 10대 주요 재벌의 24조 원 규모에 달하는 내부 거래가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이 될 예정이다.

공정위는 국내 주요 대기업·중견기업 집단의 내부 거래 등 거래 내역 공시, 국세청 과세 자료를 모니터링하면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직권조사를 하고 있다. 합리적인 고려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정상가격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상당한 이익이 되는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등이 총수 일가 사익 편취 행위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정상적인 내부 거래는 허용하되 부당한 내부 거래만 엄격한 요건과 입증 책임하에 사후적으로 규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특히 효율성·보안성·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내부 거래일 경우 제재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부당한’ ‘불가피한’의 기준이 모호해 결국 의도치 않게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통한 국세청의 조사 추징세액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854억 원이던 추징세액이 지난해에는 2,000억 원을 넘어선 바 있다. 기업들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가 ‘총수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까 걱정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 경영권 연관 줄이기 어려워"=불안 요소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총수 일가가 지분율을 20% 이하로 낮추고 계열사 지분을 팔거나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29%일 때와 19%일때 주총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의 무게감은 달라진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2018년부터 일감 몰아주기에 대응해 한 번 계열사 지분 등을 정리했지만 한층 강화된 법안이 1년 만에 시행되다 보니 준비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라며 “최소 6개월 이상의 작업을 거쳐야 하는 딜이 많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은 위반 시 과징금뿐 아니라 핵심 계열사와 임원·총수까지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총수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급식 업체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공정위가 2,300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삼성전자 및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이외에도 제일패션리테일·삼우종합건축사무소·서울레이크사이드 등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회사를 팔아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감시 대상이 되는 56개 상장사의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 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8.7%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외부와 거래하고 있는 셈이다. 필수적인 경우에만 계열사 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 유예 기간을 1년 뒀지만 거래선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공정위가 특수한 경우에 대해 조사한다고 하지만 일종의 교각살우가 될 우려가 있다”며 “유예 기간을 늘리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 싸움에 매각 조건은 갈수록 불리…"헐값에 파느니 버틴다"=그나마 미래에셋금융그룹처럼 규제 강화 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정리한 곳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최근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미래에셋펀드서비스 지분 일부를 신생 PEF 운용사인 PTA PE에 약 2,000억 원에 매각했다. 박현주 회장 일가가 지분 83%를 보유한 미래에셋컨설팅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였다.

코로나19 이후 역대급 유동성을 쥐고 있는 PEF들은 매물 리스트를 추리고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입장이다.한 IB 업계 관계자는 “시한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PEF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습”이라며 “향후 주요 대기업과의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소수 지분 매각이다 보니 거래도 쉽지 않다. 원하는 값을 받기도 어렵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은 헐값에 파느니 차라리 과징금을 받고 버티겠다고 토로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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