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최근 탄소중립위원회가 오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고 밝힌 후 떠오른 격언이다. 실제 탄중위는 이달 8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과 관련, “기후 위기의 심각성,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NDC 상향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자랑스레 제 선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탄중위의 발표에는 천문학적으로 추산되는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모두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NDC 상향에 따른 부작용으로 국내총생산(GDP) 및 일자리 감소, 전기 요금 인상, 일부 공장 셧다운, 대규모 정전 등을 예상한다.
무엇보다 각 나라들이 자국 탄소 감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탄소 감축 기준점으로 제시한 반면 우리 정부는 역대 수출 1위(6,049억 달러)를 기록하며 국내 산업이 최호황을 누리던 2018년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전략적 판단의 부재’도 엿보인다. 특히 우리 산업이나 발전의 구조를 무시한 채 과속을 내고 있는 NDC 상향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타의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탄중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연평균 4.17%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반면 1990년을 기준 연도로 내세운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연평균 1.98%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된다. 영국의 연평균 감축률은 2.81%다. 2005년을 기준 연도로 제시한 미국은 2.81%, 2013년을 기준 연도로 제시한 일본은 3.56%다. 한국의 감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적 부담이 가장 덜한 시점을 탄소 감축 기준 연도로 제시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기준 연도로 제시한 2013년은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일본 내 원전 발전 비중이 0%대로 떨어진 시점이다. 원전은 폐기물 처리 등 일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없어 친환경 발전원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실제 일본은 2030년 원전의 발전 비중을 22%로 늘리기로 해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은 1990년 20%에 가까웠던 GDP 내 제조업 비중을 지난해 한 자릿수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지난 30년간 금융이나 서비스 부문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며 ‘굴뚝 없는 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이뤄냈다. 발전 부문에서도 영국의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1990년 90.6%에 달했지만 지난해는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의 영향으로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췄다. EU와 미국 또한 이 같은 에너지 수급 체계, 산업 구조 변화 등의 변수를 바탕으로 NDC 달성 기준 시점 및 목표량을 제시했다. 철저하게 자국의 산업, 발전 구조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NDC를 선택한 셈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제조업 비중이 28.4%로 EU(16.4%)나 미국(11%)보다 현저히 높다. 한국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관련 부담이 유독 높은 셈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전국금속노조연맹 등 3개 단체는 이날 자동차 산업 생태계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무공해차 보급 속도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철강·화학 등 주요 산업 부문에서 ‘한국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은 되레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공언했다. 결국 우리 정부의 NDC 상향이 ‘중국 좋은 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발전 부문에서도 문재인 정부 들어 실시된 ‘묻지 마 탈원전’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상당하다. 2030년 원전 발전 비중은 신한울 1·2호기 가동 등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에 따른 노후 원전 폐쇄 정책 영향으로 2018년과 비교해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탄중위는 석탄 발전 감축분 등을 대신하기 위해 2019년 5.6%에 불과한 신재생의 발전 비중을 2030년 30.2%로 높이기로 했다. 문제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 중심의 발전 전략은 한국의 위도나 기후 등을 고려했을 때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백조 원의 비용 투입이 불가피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확대 및 추가 송배전망 구축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탄중위 회의에 참석했던 한 산업계 관계자는 “NDC를 환경 단체 등이 중심이 돼 논의된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전문가들이 각 부문의 영향을 집중 분석해 설정하고 있어 경제적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안다”며 “정부가 탄소 중립 선진국이라는 ‘허명’에 집착해 국민들의 ‘삶의 질’ 하락은 도외시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