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보다 1%포인트가량 낮춰 잡으면서 인플레이션 등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주문했다. 초저금리 시기 누적된 가계부채가 ‘뇌관’이 돼 금융시장 전반으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8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1년 금융동향과 2022년 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한국 경제는 완만한 회복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향후 성장과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문제 해결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그는 “가계부채가 금리 상승기에 시스템 위험 확대 요인이 되지 않도록 상환 가능 범위 내 대출, 투기적 대출 억제 원칙 아래 증가 속도를 조절하되 주택 공급 촉진 정책과 조화될 수 있도록 유연한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실장은 내년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인플레이션 확대 가능성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중국의 정치·경제 복합 리스크 △가계 및 기업 부채 리스크 등을 꼽았다. 이어 “원자재 가격 등을 중심으로 생산자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요인이 가세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초유의 0% 금리대에 쌓인 가계부채도 불안요소다. 미 연준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공식 선언했고 한국은행은 11월과 내년 상반기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다. 박 실장은 “빠른 속도로 누적된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 시기 금융 비용을 증가시켜 민간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가계부채 미시 자료 분석 결과 금리 민감도가 높은 차주의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고 경계했다. 박 실장은 최근 실적이 둔화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도 “대출 연체율은 하락 추세를 보이나 2022년 코로나19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상승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했다.
한편 금융연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3.2%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올해 전망치인 4.1%보다 0.9%포인트 낮다. 70%를 넘어서는 높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과 단계적 일상 회복 ‘위드 코로나’에 따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내수 회복세(올해 민간 소비 증가율 3.4%, 내년 3.5%)가 이어지겠으나 설비투자(8.3%→3.0%)와 수출입 증가율(총수출 8.6%→3.0%, 총수입 7.6%→4.2%)이 다소 둔화되면서다. 박 실장은 “세계 교역의 병목현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은 설비투자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제한하는 요인”이라며 “코로나19 위기 이후 수요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기업들의 태도도 설비투자 증가율을 완만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등의 공급 부족(쇼티지) 현상 심화로 완성품 생산에 차질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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