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감에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국내 증시에서 철강·조선·자동차 등 경기 민감주가 새해 벽두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반면 반도체주는 기관의 계속되는 매물 폭탄 속에 금리의 단기 급등 악재까지 겹치면서 의외의 충격을 받는 등 증시 주도주 간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증권가에서는 금리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당분간 조선·철강·자동차 등 전통 경기 민감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5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5.27포인트(1.18%) 하락한 2,953.97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기관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조 3,429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는 등 5거래일째 대규모 매도세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이 나흘 만에 313억 원 매도세로 돌아선 가운데 개인이 1조 3,082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특히 코스피를 대표하는 반도체주가 간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1.7%까지 치솟은 여파로 타격을 받은 게 뼈아팠다. KRX반도체지수는 이날 하루에만 2.99% 급락해 최근 6개월래 하락 폭이 세 번째로 컸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이날 주가가 1.65%, 2.33% 내렸다. 563조 3,702억 원이었던 양사의 시가총액은 10조 원 가까이 증발해 553조 4,255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도체주가 경기 민감주임에도 조정을 받은 것은 금리 급등 속에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비대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 때문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된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등 테크 산업의 사이클을 전체적으로 보면 비대면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가 있었다”며 “오미크론 여파가 크지 않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빨라지면서 비대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감이 반도체주의 하락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의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에서 생산자 물가와 물류 이동 시간이 하락하는 등 노동자들의 일자리 복귀가 빨라진 징후가 포착됐다. 이에 따라 미 뉴욕증시는 4일(현지 시간) 경기 민감주 중에서도 자동차 업체인 포드와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 등이 각각 11.7%, 5.4%% 크게 오른 반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0.45% 하락해 대조를 이뤘다.
관련기사
미 증시의 영향을 받아 국내 증시에서도 전통 경기 민감주가 급락장 속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자동차를 대표하는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는 주가가 이날 각각 1.67%, 2.87% 올랐고, 철강주를 대표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도 3.14%, 3.38% 상승해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이 영향으로 KRX철강지수와 KRX자동차지수는 각각 1.23%, 0.90% 증가해 새해 들어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탔다. 조선업종에서도 현대중공업(329180)과 현대미포조선(010620)이 각각 2.46%, 4.86% 올라 주가 흐름이 좋았다.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금리 인상 가속화도 경기 민감주의 부활을 이끌 요인으로 평가한다. 코로나19 직후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강한 상승세를 이어갔던 기술·성장주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높아 금리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장기간 소외 국면을 지속한 경기 민감주는 뚜렷한 이익 성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주가가 저평가돼 있어 투자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이 같은 예측 속에 기관은 양대 증시에서 올 들어 3조 5,954억 원 가까운 매도 폭탄을 쏟아내는 가운데서도 SK이노베이션과 포스코를 각각 909억 원, 455억 원 사들이며 경기 민감주를 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각각 1조 1,322억 원, 3,027억 원을 팔아치우며 반도체주를 덜어 내는 모양새다.
허 연구원은 “국내와 미국은 경기회복 수준이나 경기회복 패턴이 달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방향은 같다”며 “경기 민감주는 비대면 쪽에서 대면 쪽으로 이동하면서 정상화 사이클이 예상되지만 반도체는 코로나 직후보다 대규모 수요가 있지 않아 단기적으로 주춤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병목현상 완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회복은 국내 증시에 호재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병목현상 완화는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에 유리한 요소”라며 “반도체·자동차 등을 비롯한 경기 민감 수출주의 선전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