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2’에서는 자율주행 차량 못지않게 선박 자율운항 기술이 대거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연간 최소 5조 원대 시장으로 글로벌 선박 기자재 업체부터 대형 조선소, 레저보트 업체까지 개발 중인 자율운항 기술을 뽐냈다.
연간 새로 건조되는 레저보트가 50만 대 정도라고 가정하면 선박 자율운항 기술의 연간 시장 규모는 최소 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선과 대형 상선까지 더할 경우 관련 시장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미 건조된 선박에 자율운항 시스템을 장착하는 수요까지 더해질 수 있다. 자율주행차 시장을 두고 테슬라·구글·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이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관련 업체의 경쟁이 본격화한 이유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글로벌 레저보트 1위 업체인 미국의 브런즈윅이다. 지난 4일 온라인으로 열린 미디어 콘퍼런스를 통해 ‘ACES 전략(선박 자율운항 및 전동화 비전)’을 발표했다. 특히 이목이 쏠린 것은 자율운항 부문이다. 레저보트 소유자의 1년 평균 운항 시간은 40여 시간에 불과해 자동차의 주차에 해당하는 항만 접안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자율운항 기술이 완성될 경우 이 같은 불편이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브런즈윅은 이번 ‘CES 2022’에 오프라인 부스를 차리지는 않았지만 유럽 등 레저보트 시장이 활성화된 국가를 중심으로는 온라인 미디어 콘퍼런스를 청취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설립한 사내 벤처 1호인 아비커스(Avikus)가 자율운항 기술을 선보였다. 아비커스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가 직접 설립과 기술 개발을 챙길 정도로 각별히 신경 쓰는 회사다. 지난해 ‘오토 도킹(자동 주차)’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주문한 후 시연할 수준이 되자 직접 배에 올라 체험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이번 CES에서 “인크레더블(Incredible)”이라고 시연 당시 소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선박 자율운항 단계는 총 4단계로, 현재 레저보트에는 2단계 수준으로 개발돼 글로벌 레저보트 업체와 상용화를 위한 협력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아비커스는 지난해 총 93척의 배에 선박 자율운항 솔루션을 공급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AFP통신은 이번 CES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로 아비커스의 선박 자율운항을 꼽았다.
문제는 선박 자율운항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선박 자율운항 시연에 나서고 있다. 해외에서는 에이비비·바르질라 등 선박 기자재 업체들이 자율운항 솔루션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임 대표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완성차와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것처럼 선박 자율운항도 조종 제어 데이터를 축적한 조선사 등이 이끌어 갈 것으로 본다”며 “성장성이 큰 시장으로 누가 먼저 기술을 개발해 선점할 것인지가 앞으로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아비커스는 ‘CES 2022’에서 미국선급협회(ABS)와 선박 자율운항 기술 단계별 기본인증(AIP) 및 실증 테스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아비커스는 자율운항과 자율접안, 완전 자율운항 등 자체 개발한 다양한 솔루션을 ABS가 지난해 7월 제정한 ‘자율운항 규정’에 맞춰 단계별 실증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라스베이거스=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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