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됐던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이 사실상 무산됐다.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독과점을 우려하며 결합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과 산업은행은 ‘플랜B’ 마련에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9년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 발표 이후 3년 만에 다시 새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오르게 됐다.
EU 경쟁 당국이 13일(현지 시간)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에 최종 불승인 결정을 내린 만큼 합병은 무산됐다. EU의 결정에 우리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이 기업결합 결정을 철회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앞서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에서는 조건 없는 승인 결정을 내린 바 있다.
EU가 양사 결합을 반대한 것은 LNG 운반선 독점 때문이다. 한국은 전 세계 LNG 운반선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2019년(94%), 2020년(73%), 2021년(89%) 등 전 세계 발주량의 대부분을 국내 조선 3사가 휩쓸고 있다.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량만 따져도 세계 발주량의 60% 수준이다. EU는 양 사 합병으로 LNG 운반선 가격이 오를 경우 가뜩이나 상승 추세인 LNG 가격이 치솟을 것을 우려해 결합을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지주 측은 EU의 불허 결정과 관련해 “조선업에서의 시장 지배력은 단순 점유율로 평가하기 불합리하고 LNG선 시장의 경우 삼성중공업과 중국 후둥조선소, 일본 미쓰비시·가와사키, 러시아 즈베즈다 등 유효한 경쟁자들이 시장에 존재한다”며 “EU가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EU 법원을 통한 시정 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을 사실상 주도했던 정부는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조선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는 이날 합동 보도 자료에서 “2019년에는 조선업 업황이 어려워 국내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결합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조선 산업 여건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6년 1,400만 표준선환산톤수(CGT)까지 떨어졌던 전 세계 조선 발주량은 올해 4,700만 CGT까지 회복된 상태다. 반면 전 세계 조선 업체들의 건조 능력은 올해 4,000만 CGT로 떨어져 10여 년 전보다 38%가량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선박 발주가 둔화될 경우 한국 조선업 경쟁력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빅3 체제가 유지되는 한 수주 침체기에 과당 경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1조 5,000억 원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재무구조 불확실성이 커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비율은 297.3%로 높아졌다. 새로운 인수 주체를 찾아나서야 하는 과제도 떠안는다.
이제 공은 다시 산은으로 넘어갔다. 2019년 조선업 구조 조정을 명분으로 양사의 기업결합을 주도한 것은 산은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당시 양 사 합병이 잘못되면 회장직을 내려놓을 각오로 임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산은 입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을 계속 가지고 있자니 과거 트라우마가 부담이 되고 새로운 인수 후보를 찾는 것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앞서 2008년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넘기려 했다 무산된 적이 있다. 한화그룹은 매각 대금을 깎아주거나 분할 납부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산은이 거부했고 매각은 무위로 돌아갔다.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시장에 나올 경우 인수 후보군으로 포스코·한화·효성 등이 거론된다. 이들 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사업 연계가 가능한 대기업이다. EU가 독과점을 이유로 반대한 만큼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인수 후보군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악화 등을 고려해 인수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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