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의 공포가 건설 업계를 엄습하면서 주요 대형 건설사들이 지방 사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증되지 않은 지역 업체에 하청을 주도록 강요하는 지자체들의 요구가 거세 안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중대재해법까지 시행되면서 차라리 사업을 맡지 않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10일 서울경제가 주요 건설사들을 통해 지방 건설 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한 결과 상당수 업체들은 지자체들의 무리한 ‘지역 업체 챙기기’ 탓에 사업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의 모든 광역 지자체에서 지역 업체들이 전체 공사 규모의 50~70%가량에 참여하도록 조례로 정하고 있는데 상당수 지역 업체들은 대형 건설사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품질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부산·대구 등 대형 공사가 많은 일부 지역은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2~3개 업체 중 하청 업체를 골라야 하다 보니 품질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 하나가 마련되면 지역 정치권부터 행정기관, 시민 단체, 노동 관련 단체 등 여러 곳에서 엄청난 압박을 가한다. 함바(현장 식당)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자기네 동네 식당을 쓰라고 하는 수준”이라면서 “난색을 표하면 ‘상생의 자세가 돼 있지 않다’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내비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요구를 모두 따르면서 품질과 수익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 관리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주요 건설 업체들이 지방 공사를 아예 꺼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대형사인 A 건설사의 경우 최근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에서의 공사 실적이 단 1건에 불과하다.
품질관리에 상대적으로 강점을 지닌 대형사들이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 수도권과 지방의 공사 품질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그만 사고라도 나면 수익은커녕 이미지만 깎이는데 지방 사업에 대기업들이 진출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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