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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으로 먹고 사는 도시…보상금 받고 또 떠나면 어쩌나” [태백 탄광촌 르포]

"대체산업 없이 막무가내 폐광"

"보상금 받고 다 떠나…연금으로 사는 도시"

"상인, 안 그래도 힘든데 코로나로 죽을 맛"

오는 2024년 폐광 결정이 난 태백 장성광업소의 한 작업 공간. 김경택 기자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폐병 걸려 받는 연금으로 먹고 사는데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27일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날씨는 완연한 봄을 나타냈지만 태백 시내에는 유난히 적막감이 맴돌았다. 국내 마지막 남은 태백 장성광업소의 폐광이 결정된 이후 인근 지역은 인적이 뜸하다.

지난달 2일 대한석탄공사는 내년 말 전남 화순광업소를 시작으로 오는 2024~2025년 태백 장성, 삼척 도계광업소를 폐광하기로 노동조합과 합의했다. 이로써 1970년대 산업화의 중심에 섰던 탄광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날 서울경제가 만난 태백 주민들은 정부가 탄광업을 대체할 산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폐광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백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임 모(83) 씨는 “대체 산업이라고 만든 게 고작 카지노 하나”라며 “옛날에는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도시가 흥했는데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 4만 명이 겨우 넘는 도시로 쪼그라들었다”고 토로했다. 남궁 모(60) 씨는 “폐광 얘기가 80년대 중반부터 나왔는데 무관심 속에 방치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태백시는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 걸친 석유파동으로 석탄이 대체 에너지원으로 부상하며 경제적인 부흥기를 맞았다. 80년대 초 7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 정도일 무렵 이곳 광부의 평균 월급은 25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88 서울올림픽을 맞아 정부가 석탄 사용을 규제하고 에너지 수요가 다변화하면서 탄광업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석탄산업법’ 등을 제정하고 석탄 산업의 연착륙을 시도했지만 이는 ‘합리화’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사실상의 탄광산업 구조조정이었다.

이후 태백시는 지금까지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태택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광업 종사자 수는 10년 전인 2011년 1461명에서 지난해 말 546명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태백시의 임금 근로자 중 상용근로자는 지난 2016년 1만 5000명에서 지난해 9300명으로 38%나 줄었다. 반면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비율은 지난해 말 27.5%로 5년 전인 2016년 20.5%에 비해 크게 늘었다. 남궁 씨는 “산지가 대부분인 지형 특성을 이용해 관광 등 다른 산업을 키울 수도 있었을 건데 정부에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태백 황지자유시장. 이건율 기자


고령의 주민들은 태백시의 이러한 모습을 연금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비유했다. 30년 이상 광부로 일하다 은퇴한 노 모(73)씨는 “오랜 탄광일로 폐병에 걸려 받는 장애인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다른 주민들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며 “주민 대부분이 연금 수급으로 살아가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임 씨는 “광산 하나 문 닫을 때마다 젊은이들은 퇴직금이랑 보상금 받고 다 대도시로 떠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태백시 경제 구조는 복지·행정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비스업 분야에 편중돼있다. 지난 2019년 태백시의 종사자 수 기준 산업 비중은 도·소매업(13.94%), 숙박 및 음식점업(12.54%),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9.91%) 순으로 나타났다. 산업 구조가 숙박·음식점 등 서비스업에 집중되면서 지역 경제는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별다른 대체 산업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적게 나마 들어오던 관광 수입마저 전염병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토로했다. 태백에서 15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해온 고 모(70) 씨는 “주말에는 그래도 태백산 관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식당에 꽤 많이 들렸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관광객들도 크게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식당 사장 임 모(70) 씨는 “매출이 2년 만에 반 토막 났다”며 “인구가 4만 명밖에 안 되는데 차라리 행정 구역을 ‘시’에서 ‘읍’으로 강등해 세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교된 후 숙박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태백시의 한 초등학교. 강도림 기자


태백의 지역 소멸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5년간(2017~2020년) 태백의 만 0~29세 인구는 1만 2051명에서 9418명으로 21.8% 감소했다. 같은 기간 태백시 전체 인구 감소율(4만 5888명→4만 844명) 10.9%의 약 2배에 이른다.

복지 정책이 젊은 세대에게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말에는 이한영 태백시의회 의원이 시의 청년 정책을 비판하며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야한다고 주장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공인중개업자 성 모(59) 씨는 “장성 광업소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폐광으로 앞다투어 집을 팔려고 하고 있다”며 “지역 경기가 갈수록 어두워지는 걸 몸소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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