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아버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끌어온 SM엔터테인먼트가 기관투자가와 약 3년간 벌여온 싸움에서 결국 백기를 들었다. 발단은 이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가 SM으로부터 약 20년간 1500억 원가량 받아온 ‘용역비’다.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왔고 결국 2019년부터 KB자산운용이 공개적으로 주주서한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지배구조 이슈가 불거졌다. SM은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소액주주와 다른 기관투자자들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내세운 감사 선임에 성공하는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31일 서울 성동구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디타워 2층 회의실에서 열린 SM의 정기 주주총회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72석이 마련된 주총장을 채운 대부분 SM 경영진과 맞서는 얼라인파트너스의 제안을 받은 소액주주들이었다. K팝에 관심이 많은 20대 주주도 상당수 모인 가운데 얼라인 측은 3박스에 달하는 의결권 위임장을 제출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외국인 투자가들과 소액주주들이 얼라인을 지지하며 판세가 급격하게 기울자 SM은 결국 자신들이 내세운 감사 및 사내·사외 이사 후보를 거둬들이며 표대결을 포기했다. 얼라인 측이 추천한 곽준호 전 KCF테크놀러지스(현 SK넥실리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단독 후보로 나와 출석 주주 803만여 주 중 81%에 해당하는 653만여 주의 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SM 측은 “주주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내부 회의를 거쳐 사측 추천 후보들이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이번 승리’가 한명의 감사 선임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행동주의 기관 투자가가 내세운 감사가 회사에서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내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 이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되더라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될 창구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는 “일반 주주들이 승리한 것은 국내 행동주의의 상징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이번에 선임된 곽 감사는 유능한 재무 전문가로 SM 최대주주는 물론 회사와도 아무런 접점이 없어 회사를 감시해 문제가 되는 사안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제대로 시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M은 이 총괄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 20년 용역 계약을 맺어오며 이 기간 15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결 기준 675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지난해에도 라이크기획에 240억 원의 용역비를 지급했다. 이미 2019년에도 KB자산운용은 라이크기획과 SM이 합병할 것을 제안했지만 SM 측은 “라이크기획과 합병을 강요할 수 없으며 계약 변경 혹은 종료 시 SM의 경쟁력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절했다. 당시 KB운용의 제안은 다른 주주들의 미온적인 입장으로 인해 주총 표대결까지 가지 못했다.
이번 주총을 앞두고 얼라인 측이 지적한 부분도 과거와 비슷했지만 진행되는 과정은 사뭇 달랐다. 이번 주총 승리의 일등공신인 얼라인 측 역시 보유 지분이 0.91%에 불과해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하지만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활용해 동학개미들로부터 의결권 위임을 받으며 승기를 굳혀갔다.
시장에서는 이번 주총을 계기로 카카오와의 매각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업계 등에 따르면 카카오의 콘텐츠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이달 중 이 총괄의 SM 지분 18.27%를 약 7500억 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총괄이 SM 매각 후에도 현재와 같은 수준의 경영 참여를 하겠다는 조건과 상당한 수준의 연봉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난항에 봉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 총괄이 SM을 매각할 경우 지금처럼 라이크기획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없기에 이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과 이사진 등이 SM과 라이크기획 간의 용역 계약 개선을 고민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라며 “이 총괄의 협상력이 다소 약해진 셈인 만큼 카카오와의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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