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강국이라는 ‘코리아 위상’이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수출 점유율이 2011년 3.1%에서 2021년 2.9%로 0.2%포인트 뒷걸음질친 반면 중국의 수출 점유율은 같은 기간 10.5%에서 15.1%로 4.6%포인트나 급증했고 대만도 1.2%에서 2.0%로 0.8%포인트 개선됐다.
차기 정부가 반도체·배터리·전기자동차 등 미래 핵심 산업을 육성할 마스터플랜을 서둘러 마련하고 세제 지원과 우수 인력 양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동아시아 주요 경쟁국의 수출 경쟁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경쟁국인 중국과 대만의 수출 점유율은 개선되는 양상이 뚜렷해진 반면 한국은 되레 후퇴했다.
최근 10년간(2011~2021년) 한국의 수출 규모는 5552억 달러에서 6444억 달러로 16.1% 증가했지만 대만은 같은 기간 2044억 달러에서 4070억 달러로 99.1% 급증했다. 중국은 1조 8993억 달러에서 3조 3625억 달러로 77.0%나 늘었다. 한국의 수출액 증가율은 대만의 6분의 1,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중국이 저가 제품을 앞세워 맹추격했지만 조선·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구조조정을 소홀히 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과속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친노동 정책 등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중국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255.9%(2011년 320억 달러→2020년 1171억 달러)에 달했고 대만은 246.1%(356억 달러→1232억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108.8%(397억 달러→829억 달러)에 그쳤다. 반도체 수출 규모에서는 대만에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
자동차의 경우 중국은 수출액 증가율이 54.1%에 달했고 대만은 53.0%를 나타냈지만 한국은 -19.2%를 기록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최근 10년간 한국의 핵심 품목 수출 경쟁력이 동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며 “반도체 등 주력 사업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규제 혁신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최근 중국·대만에 크게 밀린 것은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간섭과 반(反)기업 정책이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정책 기조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갈 길 바쁜 수출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과 같은 효과가 불분명한 정책에 많은 힘을 쏟았다”며 “이제는 디지털 혁명에 대응한 자본 유입 정책 외에 관련 규제 개편 등으로 산업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벌어진 수출 격차는 더 심각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 증가율(108.8%)은 중국(255.9%), 대만(246.1%)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수출액 규모 자체도 중국(1171억 달러), 대만(1232억 달러)이 모두 한국(829억 달러)을 뛰어넘었다.
자동차 부문에서도 중국과 대만은 10년간 수출액을 54.1%, 53.0%씩 늘렸다. 반면 한국은 수출액이 671억 달러에서 542억 달러로 감소하면서 점유율도 1.0%포인트 후퇴했다. 기계 분야 역시 한국의 수출액은 고작 13.7% 증가한 사이 중국과 대만은 각각 24.4%, 91.5% 늘었다.
양국 간 수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출경합도지수에서도 중국과 대만의 진격이 두드러졌다. 한국과 중국 간에는 전자 기기, 반도체, 자동차, 기계 등 주요 4개 품목 중 반도체·자동차 등 2개 부문에서 2011년 대비 2021년 수출경합도가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대만 간에는 반도체, 전자 기기, 기계 등 3개 품목의 수출경합도가 높아졌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전경련의 분석 대상이 된 업종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수출 품목 중 보고서에서 빠진 배터리,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다른 모든 분야에도 중화권 국가들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배터리 업종에서는 세계 최대 기업인 CATL을 앞에워 중국 기업들이 거센 공세에 나서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올해 1~2월 기준 34.4%로 전년 동기(27.5%) 대비 6.9%포인트 올랐다. CATL에 이어 2위를 차지한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20.7%에서 13.8%로 하락했다.
전기차 분야도 마찬가지다. 시장 조사 기관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순수전기차의 60% 이상을 중국 기업이 공급했다. 세계 최대의 내수 덕분이다. 중국은 글로벌 10대 전기차 브랜드에 비야디(BYD·4위), 창청차(8위), 광치차(9위), 지리차(10위) 등 4곳이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은 현대차그룹(6위)이 유일했다. 중국은 니오·샤오펑·리오토 등 스타트업부터 초고가 제품 생산 업체까지 폭넓은 성장을 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정부가 국내에서라도 보조금 정책 등을 활용해 우리 기업의 전기차 생태계 확장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수출 기업의 이 같은 부진을 초래한 요인으로는 정부의 관치 중심 정책이 꼽힌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으로 기업을 옥죈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 2년 차 때인 2018년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기업, 수출 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은 과거 압축 성장 시대에 효용이 다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노동시장 양극화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져 내수를 위축시켰다. 디지털 등 첨단 기술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현 정부의 ‘정책 실험’ 속에 후순위로 밀렸다. 정부는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이 잇따르자 지난해에야 ‘반도체특별법’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지역 균형 논리 등으로 반쪽짜리 특별법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지부진한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구조 조정 또한 국내 산업 경쟁력 하락을 부추겼다. 정부 주도의 대우조선해양과 쌍용차 매각 작업은 여전히 공회전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사장 알박기’ 논란에도 휩싸이며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오너십 경영’에 바탕을 둔 한국 기업 특유의 과감한 투자가 최근 몇 년 새 대폭 줄어든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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