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초기 단계인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 선점을 두고 증권사들이 잰걸음을 하고 있다. 기존 증권사와 제휴를 맺고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던 스타트업이 신규 증권사 설립에 나선다. 비상장주식 시장을 놓고 ‘신구 권력’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존 증권사들도 전담 조직 구성, 인력 확충, 리포트 발간에 적극 나서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1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을 운영하는 피에스엑스(PSX)다. 피에스엑스는 최근 투자 중개업 인가를 받아 스타트업·신산업 특화 증권사로 발돋움하겠다고 밝혔다. 피에스엑스는 민간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중 2위로 지난해 11월 말 기준 누적 가입 고객이 7만 명, 누적 거래 대금은 270억 원이다.
그동안 피에스엑스가 플랫폼으로서 비상장주식 거래를 중개하고 이 내역을 제휴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에 전달하면 증권사가 결제하는 식으로 사업을 펼쳐왔다. 피에스엑스가 이 같은 방식을 택했던 건 자본시장법 때문이었다.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거나 등록하지 않고 금융투자업자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피에스엑스는 증권사 제휴와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사업자 지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업계에서는 피에스엑스의 증권사 설립 소식을 사실상 ‘홀로서기’로 평가한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급성장하는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 선점과 향후 수익을 고려하면 제휴 형태보다는 독자적인 사업 추진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그간 국내 유일의 제도권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이었던 K-OTC의 2021년 시가총액은 31조 원으로 2020년 17조 원 대비 82.3%나 늘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가입자가 70만 명, 누적 거래 대금은 6500억 원으로 업계 1위인 두나무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피에스엑스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삼성증권과 제휴를 맺고 있다. 증권플러스 비상장까지 증권사를 세우겠다고 나설 경우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을 둔 신구 증권사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질 가능성도 나온다.
기존 증권사들도 비상장주식 전담 조직, 분석 보고서 작성 등 비상장주식 시장에 눈독 들이고 있다. DB금융투자는 2019년 8월 비상장 기업 담당 애널리스트 3명을 투입해 현재까지 비상장 기업 리포트 95건, 시장 분석 리포트까지 포함하면 총 170건을 내놓았다. NH투자증권은 비상장 기업을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VC) 심사역 출신의 오세범 애널리스트를 올 1월 영입했다. 오 애널리스트는 3월 ‘비상장회담, N잡러의 시대’, 4월 ‘비상장회담, 참을 수 없는 유혹, 한·정·판’ 등 비상장주식 보고서를 꾸준히 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비상장 기업뿐만 아니라 비상장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과 이슈까지 심층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다. 비상장 기업 전담 조직을 꾸린 증권사도 있다. 지난해 10월 신성장기업솔루션팀을 만든 KB증권이 업계에서는 첫 시도였다. 해당 팀에 배치된 전문 연구원은 6명으로 팀이 꾸려진 지난해 말부터 비상장 기업 리포트 ‘케비어(케이비 비상장 어벤져스)’를 내놓고 있다.
증권사들은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을 신사업 영역으로 점 찍고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큰 반면 개인투자자들의 목표 수익률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비상장주식만 한 게 없다는 분석이다. 또 비상장 기업의 향후 기업공개(IPO) 등을 염두에 두고 유망 업체를 미리 파악해 선점하기 위한 행보라는 설명도 나온다.
올 상반기 도입 예정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증권사들이 비상장 기업에 관심을 두는 요인이다. BDC는 주식시장에 상장한 특수목적회사(SPC)로 비상장 기업, 코넥스 상장 기업 등에 60% 이상을 투자한다. BDC가 도입되면 VC의 고유 영역이었던 비상장 종목에 대한 투자 문턱이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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