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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절벽·금리인상·주가하락 '3중고'…이대론 '데스밸리' 갇힐판

■K바이오 '고사 위기'…퀀텀점프커녕 '보릿고개' 허우적

특례상장 개편해 신뢰 높인다지만 당장 자금조달 막막

R&D·임상 차질 이어 기술수출도 제값 못받아 악순환

빅파마 구조조정에 투자자도 등돌려 연말까지 생존 기로





“바이오 기업들에 올해는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잘 넘겨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국내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올해 바이오 업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올 들어 바이오 산업 시장에는 ‘돈줄’이 막혔다”며 “이대로 가면 깊고 긴 ‘데스밸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이오 벤처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바이오 업계의 돈줄이 말라버렸다.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편이 장기화하면서 기업공개(IPO)는 단절됐다. 최근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바이오 벤처 수익의 핵심인 기술수출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주식시장의 투자 심리도 얼어붙으면서 그야말로 ‘3중 파고’가 한꺼번에 덮쳤다. 신약 연구개발(R&D), 임상 등 대규모 자금이 꾸준히 투입돼야 하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현재와 같은 ‘자금 조달 보릿고개’가 이어진다면 글로벌 제약·바이오 강국으로의 퀀텀점프는커녕 성장판이 조기에 닫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얼어붙은 IPO…"길어지면 버티기 어렵다"=IPO를 통해 R&D 및 임상 자금을 조달하려는 바이오 벤처들에 올 들어 지속되고 있는 ‘기술특례상장 절벽’은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올 들어 기술특례를 통해 IPO에 성공한 기업은 애드바이오텍·바이오에프디엔씨·노을 등 3곳에 불과했다. 기존에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이 줄줄이 ‘사고’를 치면서 한국거래소가 눈높이를 높인 데다 개편 작업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IPO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특례 제도를 활용해 상장한 기업은 150곳 중 65.3%(98개)가 바이오 기업이다. 문제는 기술특례 상장사들 가운데 거래가 정지된 4곳(신라젠(215600)·인트로메딕(150840)·디엑스앤브이엑스(180400)·큐리언트(115180))이 모두 바이오 기업이라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결국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심사 기준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기술특례상장 개편을 위한 ‘표준 기술평가 모델’이 예상보다 늦어진 올해 말에야 도입될 예정이다 보니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생존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존에 중요시했던 기술수출과 임상 시험의 유효성을 두 축으로 하면서 평가 기관별 공통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 목표”라며 “나아가 별도의 평가 기준이 필요한 혁신 업종의 심사 기준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상장 문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바이오 산업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자금난이 심각한 기업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당장 지난해 말 기술성 평가에서 탈락하고 새로운 기술성 평가 도입 시기로 IPO 일정을 연기한 콘테라파마·스탠다임·딥바이오 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개편 전 기준으로 IPO를 강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새로운 평가 모델이 활성화할 때까지 추가 시리즈나 프리 IPO 투자 유치로 운영자금을 충당할 예정이지만 상장 일정이 계속 늦춰지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빅파마도 구조 조정…'기술수출 절벽' 오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추세도 바이오 업계에는 심각한 악재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빅파마를 대상으로 한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시장 규모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13조 3720억 원(33건)의 기술수출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1분기 6건을 기록했고 2분기 들어 4~5월에는 단 한 건에 그쳤다. 신약 후보 물질 기술이전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일 뿐만 아니라 기술특례 제도를 통한 상장의 필수 조건 중 하나다. 기술수출이 줄어들면 그만큼 IPO 문턱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IPO 예정인 한 바이오 벤처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기술이전 협상이 아예 깨지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며 “그나마 수요가 꾸준한 항암제는 기술이전 협상과 가격이 유지되겠지만 성공 확률이 낮은 뇌 질환과 임상이 오래 걸리는 자가 면역 질환의 신약 후보 물질 기술이전은 거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 심리가 얼어붙다 보니 최근에는 중대형 규모의 계약보다 초기 공동 연구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 글로벌 빅파마들 역시 주가 하락과 실적 부진으로 투자 여력이 줄면서 기술수출도 제값을 받기 어려워졌다. 바이오젠은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헬름’의 판매를 철회하면서 1000여 명 규모의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MSD도 미국 공장 직원 300명을 감원했다. 미국 바이오 벤처 브리지바이오파마는 최근 임상 실패에 따른 주가 급락으로 인력 구조 조정은 물론 핵심 파이프라인 1~2개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기술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리 상승과 바이오 기업의 주가 부진 등으로 인해 기술을 저렴하게 거래하고자 하는 빅파마들과 높은 가치에 기술을 이전하고자 하는 바이오 기업 간의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치기’된 바이오…떠나는 투자자=기술특례 상장사들의 주가는 대부분 지난해 고점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백신·치료제 개발에 기대를 걸었던 투자자들은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 실제 코로나19 백신·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수십 개의 바이오 기업 중 현재까지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곳은 셀트리온(068270)·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정도밖에 없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임상 스케줄보다 주가 그래프에 맞춰 치료제 개발 계획을 공개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었다”며 “상용화를 완료할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곳은 한정적”이라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은 바이오 산업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4%를 기록했다. 2020년 9월 최대 14.5%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떨어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것이다. 박재경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주가 하락과 IPO 시장 냉각이 결국 바이오 기업의 자금 조달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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