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기대감을 갖고 있던 ‘물가 정점론’이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로 물거품이 되면서 이번주 국내 증시가 크게 휘청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스피가 그간 2600선에서 형성한 하방 지지력이 무너지면서 하락장을 거듭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분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후 통화정책에 대한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질 때까지 경계감이 유지되면서 고물가·긴축 강화 공포가 확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코스피는 전주 대비 74.78포인트(2.80%) 떨어진 2595.87에 거래를 마쳤다. 2600선의 하방 지지력을 유지하던 코스피는 미국에 이어 유럽마저 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지지선이 붕괴됐다. 코스닥 역시 같은 기간 21.65포인트(2.42%) 빠진 869.86에 장을 마감했다.
미국 CPI로 확인된 인플레이션 강화 우려가 국내 증시를 짓누를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증시는 미리 선반영된 인플레이션·긴축 강화라는 악재에 적응하는 듯 했으나 우려가 해소되기는커녕 강화되는 모습에 맥을 못 추는 양상이다. 미국 CPI가 발표된 직후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점도 국내 증시에 부담을 더한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73%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포어스(S&P)500지수는 2.91%,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52%씩 급락했다.
증권가는 코스피가 하방 지지력을 테스트하면서 하락 장세를 거듭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주 초반 2550선 지지력 테스트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도 “2500선으로 하방 지지선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테슬라 중심으로 성장주들이 더 많이 하락했는데, 멀티플을 많이 받는 성장주 위주로 조정폭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고물가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미국 연준이 자이언스스텝(기준금리 75bp 인상)을 밟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점 역시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예정이다. 이달 14~15(현지시간) 열리는 FOMC에서는 여전히 50bp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은 여전하다. 다만 7월 FOMC에서부터 긴축 속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시장 또한 FOMC 결과 뿐 아니라 회의록과 위원들의 발언에 대한 경계심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아울러 자이언트스텝이 기정사실화된다면 증시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증권가는 고물가에서 자유로운 업종에 투자할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원자재와 여타 중간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만큼 가격을 판가로 전가할 수 있는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며 “정유·화학·철강/금속과 같은 경기민감 유형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향후 업황 개선이 있고 물가와 금리 인상 충격을 덜 받으며 규제 완화 등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업종이라면 불안한 시장에서도 버틸 수 있다고 본다”며 “해당 범주에는 2차전지·신소재·음식료·금융·IT(소부장)·유틸리티 등이 있다”고 밝혔다.
성장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멀티플을 많이 받는 성장주 위주로 조정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성장주는 금리 인상 이슈에 민감하다 보니까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연구원 또한 “단기 낙폭이 과대하더라도 밸류에이션 레벨이 높은 성장주 유형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금리에 추세적으로 하향 신호가 올 때까지 이들에 대한 접근은 유보해두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증권가는 당분간 증시 하락세가 이어지더라도 충격 매도에 나서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3분기 증시 ‘안도랠리’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에는 변함이 없는 만큼 매도를 미루면 현재보다 나은 가격에 정리할 수 있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더욱 적극적으로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미국의 근원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달 발표를 하회하면서 인플레 피크아웃 기대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서정훈 연구원 또한 “중국 경기 사이클이 침체를 경험한 이후 리오프닝과 함께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중국 부양책이 본격화된다면 경기 모멘텀은 재차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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