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대한민국 방위산업계에 낭보가 들려왔다. 칼빈 소총용 국산 탄약 47만 달러어치가 미국에 판매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세워 무기 국산화의 첫발을 내디딘지 5년여만에 이룬 첫 수출 실적이었다. 1979년에는 미사일고속정 4척을 인도네시아에 공급하며 동남아시장 등의 개척에 성공했다.
방산수출 실적은 1980년대까지 규모가 작고, 부가가치도 낮았다. 국내 방산업계의 원천기술이 일천해 대부분 핵심 무기 및 장비를 해외기술이나 제품을 도입한 뒤 국내에서 단순 조립생산하거나 개량해 판매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순수 국산기술·제품 개발의 성과가 가시화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오늘날 명품 무기로 불리며 수출효자로 떠오른 K9자주포, KT-1훈련기,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 등이 1990년대 개발성공 소식을 전했다. K2흑표전차 개발사업도 1990년대에 시작됐다.
국산 원천기술 확보노력은 2000년대 들어 수출 급성장의 결실로 이어졌다. 연간 방산수출액(수주액 기준)이 2001년 사상 최초로 2억 달러를 넘어섰다. 7년뒤인 2008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어서 불과 3년만인 2011년 20억 달러를 넘어선 뒤 2020년까지 매년 20억~30억달러초반대의 안정적인 해외 신규 수주 성과를 냈다.
그리고 마침내 연간 수출 10조원 장벽을 넘는 ‘방산한류 빅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이 70억 달러를 넘어서 약 72억5000만 달러(9조7005억원)에 달한 데 이어 올해 사상 최초로 10조원 돌파해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실적이 기대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수출계약이 체결됐거나 사실상 계약 확정단계에 있는 신규 수주실적은 이미 11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방산업계는 연말까지 정부가 세운 목표치인 150억달러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전세계 방산수출국가중 20위(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자료 기준)였던 한국은 2020년 6위까지 올라섰다. 같은 기간 4위에서 8위로 하락한 중국은 대한민국에 추월당했다.
◇"가격 할인 보다는 기술 교육시켜달라"=수출 빅뱅의 원천은 기술국산화였다. 국산화를 빠르게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기간의 손익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개발 인력 육성에 올인한 정부 정책과 기업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국산 방산기술이 전무하던 시절 해외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대신 국내 연구개발(R&D)인력을 수출국 현지에 연수를 보내거나 현지 기술자를 국내에 자문역으로 불러들여 기술개발 노하우를 적극 전수 받은 것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선진국들이 무기를 해외에 팔 때에는 일반적으로 ‘절충교역’ 조건으로 가격을 할인해준다거나, 수입국의 제품, 서비스를 일정 금액만큼 사준다거나 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무기 수입시 인재교육, 기술전수를 최우선 절충교역 조건으로 내세워 왔다”고 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영국 ‘T-59 호크’ 고등훈련기 및 미국 F-16전투기 도입 사업이었다. 우리 정부는 1991~1992년 공군 조종사 교육용 고등훈련기 ‘호크’를 20대 수입하는 대신 절충교육의 일환으로 기술교육을 요구했다. 영국이 이를 수용했고, 우리 측의 석·박사급 R&D요원 8명(ADD 인력 4명, 민간방산업계 인력 4명)이 현지 연수를 다녀왔다
우리 정부는 이어서 1992~1998년 미국 F-16전투기 120대를 구매(일부는 국내 라이센스생산)했다. 이는 일명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이었는데 당시에도 정부는 절충교역 조건으로 우리 R&D인력의 미국 기술교육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일명 ‘황매팀’으로 불리는 30여명의 인력(ADD 및 방산업계 출신)이 현지로 유학가서 항공기 개발 관련 노하우를 습득했다. 영국 유학팀을 비롯한 황매팀은 최초의 국산 고등훈련기 ‘T-50’ 개발의 주역이 됐다. 이들이 씨앗이 돼 국내 방산업계의 항공기 연구인력은 1,000여명을 훨씬 넘어서게 됐다. 이 같은 R&D인재 육성에 힘입어 ADD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내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기 개발을 마치고 올해 첫 시험비행을 성공시켰다.
◇제조공법 혁신으로 경쟁력 확보=일반적으로 공산품 시장에선 ‘규모의 경제 효과’가 가격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힌다. 많이 팔수록 생산단가가 낮아져 판매에 유리한 가격결정력을 갖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전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선점한 주요 선진국 방산기업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로 후발주자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선진국 기업들은 차세대 기술의 선행 투자로 앞선 성능의 무기 및 장비를 다수 확보한 상태다.
후발주자인 대한민국이 이 같은 열위를 극복하고 가격·성능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주요 전략 중 하나가 제조공법의 혁신이다. 로봇 등을 활용해 생산공정을 자동화·정밀화하고 생산효율성을 높였다. 방산업계의 한 임원은 "우리 방산업계는 설비 자동화 비율을 높여 고품질, 고성능의 제품을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KAI와 LIG넥스원, 한화디펜스, 현대로템이 제조공법 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 사례다. KAI는 현재 항공기 날개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자동화한 상태인데 이를 자사의 모든 공장 및 협력업체들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정밀유도무기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떠오른 LIG넥스원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제조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3D프린팅 기법을 양산 및 품질관리 체계에 적용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장관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대로템의 경우 용접분야에서 로봇적용을 확대하고 용접봉의 국산화 개발에 나서며 제조기술 향싱 및 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플라노밀러(정밀가공장비)를 생산공정에 도입하고, 용접공정을 로봇으로 자동화했다. 또한 소형가공공정을 아웃소싱하는 등 제조혁신을 통해 작업공수를 초도양산 대비 무려 74%나 절감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이 1년 넘길 서비스, 한국은 1달내에 해결=K-방산 기업들이 수출시장에서 대도약에 된 배경에는 기술 국산화 및 제조공법 혁신 등으로 제품의 가성비를 높인 것이 크게 작용했지만 또 다른 영업비결도 한 몫을 했다. 바로 감동 어린 사후 서비스와 상생전략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유럽, 러시아산 무기들을 수입한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열악한 사후지원서비스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수입한 무기 및 장비에 고장이 나거나 부품교체 주기가 다가올 경우 제품 공급업체가 제대에 해결해주지 않고 장기간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전투기, 전차, 전투함과 같은 고가장비일 수록 심해진다. 예컨데 전투기 수리에 미국이 짧게는 2~6개월, 길게는 1년 가량 소모된다면 유럽산은 아예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어지간하면 1~2달내에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러다보니 한국산 방산제품을 써분 국가의 고객은 한국산 제품을 또 찾게 된다.. 예를 들어 KAI는 자체 개발한 한국형통합물류시스템(KLIS)을 항공기 구매한 해외 국가에 설치해 현지 부품, 자재 등의 제고, 교체주기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지원하고 수시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만 파는데 그치지 않고 고객국가의 산업계와 동반성장하는 윈윈 전략도 방산한류의 비결이다. 한화디펜스의 경우 무기를 수입한 국가에 방산뿐 아니라 한화그룹 내의 에너지, 시스템, 건축 등 여러 분야의 계열사들을 동원해 다양한 형태의 사업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현대로템도 해외 수출시 현지 방산업체와 기업간(B2B) 협력사업을 모색하고, 글로벌 시장 공동개척에도 나서는 전략을 세웠다.
우리 군의 한 장성은 “안보협력 차원에서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가 수출한 무기를 써보고 품질과 서비스에 감동 받았다고 극찬하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며 “우리 방산기업이 단순히 수출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전세계 주요국들과 깊은 신뢰와 우호를 쌓으며 국위선양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