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들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달부터 반등장이 시작됐지만 미국의 긴축 및 경기 침체 우려로 베어마켓 랠리의 끝이 보이는데다 미국 달러 가치의 구조적 강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다. 미국 주식을 더 사자니 역사적 고점에 다다른 환율이 신경 쓰이고, 팔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익률이 눈에 밟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서학개미로서는 진퇴양난에 처한 셈이다. 서학개미들은 이미 지난달 약 3년간의 순매수 행진을 멈추고 소폭 팔자로 돌아선 이후 이번달에는 약 7억 달러에 육박하는 매물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강달러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 일부 차익 실현을 통해 달러 현금을 확보할 필요는 있지만 서둘러 환전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28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는 올 7월 미국 주식을 순매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8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첫 순매도 전환이다. 순매도 규모는 7월 367만 달러(약 48억 9000만 원)에서 8월 6억 7405만 달러(약 9052억 원)로 급격히 늘어났다. ‘믿을 건 미국 뿐’이라며 연일 매수 행렬에 나섰던 서학개미가 고환율에 추가 매수를 망설이는 데다가,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 물량을 쏟아지며 순매도로 전환했다는 분석이다.
올 들어 서학개미들은 환차익으로만 11.7%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원달러 환율은 1월 3일 1191원80전에서 8월 26일 1331원30전으로 11.7% 올랐다.
미국의 빅테크 주식들은 연초 대비 하락률이 환율 상승분보다 작아 지금 팔아도 수익권이다. 애플의 경우 연초 대비 지난 26일까지 하락률이 7.86%이었다. 빅테크 주식에 대한 서학개미들의 매도세가 몰린 이유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애플로 2억1958만 달러 어치를 팔았다. 2위는 테슬라로 1억4886만 달러의 순매도를 기록했으며 3위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 ETF(TQQQ)로 순매도 금액은 1억1015만 달러였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6708만 달러), 알파벳 (5468만 달러) 등 빅테크 위주로 순매도가 많았다. 이종훈 삼성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은 “만약 지금 해외 달러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 환율 레벨에서 차익 실현을 하고 지켜 보는 것이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식 전문가들은 일부 차익실현을 통해 달러화를 손에 쥐고 변동성 장세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달러의 구조적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서둘러 달러를 환전을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이 본부장은 “지금의 달러 강세는 구조적인 면이 강하기에 원화가 예전처럼 달러당 1000원대로 돌아가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기에 그 부분을 감안해 매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육진수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은 “현 국면에서 달러 인덱스는 미국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 사이클과 연동되는 경향이 크다”며 “달러 인덱스의 변곡점을 살피려면 미국 통화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달러 강세가 이어지리란 분석도 나왔다. 박형민 NH-아문디자산운용 글로벌솔루션본부 부장은 “일부 해외 자산을 매도해 최근 가격이 급락한 국내 주식으로 전환할 만한 시기”라면서도 “적어도 내년까지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전망인데, 달러도 강세를 띌 전망이다”고 말했다. 김대영 KB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은 “변동성 대비 차원에서 일부 차익 실현을 고려할 만하다”며 “환율과 주식 모두 변동성이 커졌기에 시점과 금액을 분할해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운용본부장들은 하나같이 환율을 보고 해외 주식 매매 타이밍을 잡는 대신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분할 매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육 본부장은 “미국에는 장기 상승하는 퀄리티 주식이 다수 존재한다”며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종목은 500~1000% 상승하지만 환율 변동은 ±30%에 그치는 만큼 퀄리티 주식을 장기, 분할 매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이 본부장은 “환율 예측은 자산 가격 추정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며 “자신만의 특별한 관점이나 불가피한 상황이 있지 않은 한 환율의 등락을 예측해 투자하기 보다는 장기간 분할 매수하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달러 강세에도 매수할 만한 종목으로는 성장·기술주를 꼽았다. 박 부장은 환율의 레벨에 따라 섹터 매력도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사장에 상당 부분 반영됐기 때문에 금리가 안정 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반기 부진했던 성장주 및 기술주들의 매력도가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도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익을 장기적으로 상쇄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좋은 우량 성장 주식들은 여전히 투자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종갑·정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