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하다 보니 (서울) 올라와서 판매할 시간도 없고 판매할 기회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수수료도 만만치 않아서 엄두가 안 나죠.”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열린 ‘공예품특별판매전’에 참여한 소상공인에게 “왜 서울에서는 이렇게 저렴하고 고급스러운 데다 우리 전통을 살린 도자기 그릇을 볼 수 없냐”며 놀라서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공예품특별판매전’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우수 공예품 제조 업체와 유명 작가의 생활 도자기 등 공예품이 판매됐는데 도자기 하나에 8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우리 전통 기법으로 만들어 아름답고 튼튼한 접시 하나에 2만 원으로 가성비가 높은 제품들이 방문객들을 사로잡았다.
서울 주요 백화점을 비롯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해외 명품 브랜드의 생활 도자기를 판매하다 보니 ‘우리 도자기’의 존재는 우리에게 잊혔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가야토기·고려청자·분청사기·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와 전통은 찬란했다. 그런데 이를 지켜내고 있었던 것은 지방이었다. 여전히 지방에서는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 시장도 사라지는 우리 문화 중 하나다. 편리한 대형마트에 밀려 점점 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만 전통 시장은 우리 장보기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소다. 덤·에누리·흥정 등은 우리나라 특유의 시장 문화가 탄생시킨 단어다. 마트에서는 바코드에 입력된 가격을 칼같이 지불해야 한다. 콩나물 한 주먹 더 주면 사겠다는 흥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덤·에누리·흥정이라는 단어는 재래시장의 소멸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언어가 사용되는 장소가 사라지면 단어 역시 함께 사라지니 말이다.
우리 전통은 이미 많이 사라졌지만 사라짐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제2의 도시’라고 불렸던 부산마저 ‘인구 소멸 도시’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부산마저 사정이 이러한데 도자기를 비롯해 재래시장, 재래식 된장·고추장, 각 지방의 특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식문화를 보존하는 지방이 소멸될 경우 우리 전통도 소멸로 접어든다는 생각이다. 전라도식 김치·젓갈, 대구식 곱창구이, 제주 오메기떡 등을 만들 수 있는 이들 중 젊은이는 얼마나 될까. 한식 백반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엄마 집밥’을 밀키트로 먹는 세상이지 않나.
도자기를 비롯해 식문화·재래시장 등 우리 전통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정책적 지원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공예품특별판매전'은 중소기업중앙회와 롯데백화점 간 상생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일회성 이벤트라고 할 수도 있지만 며칠 간의 행사가 일종의 서울과 지방을 잇는 ‘플랫폼’이 됐고 이 플랫폼은 전통을 이어가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방 소멸의 이유로 지방 젊은이들은 일자리 부족을 꼽는다. 고향에서 살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우리 전통문화를 살린 사업을 이어가는 소상공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역시 생각해볼 만하다. 이를테면 오메기떡 만들기 전통을 이어가는 MZ세대에 대한 창업과 판로 지원을 보장한다면 지방 일자리와 전통의 계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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