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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이유[양철민의 경알못]

영화 '달콤한 인생' 속 보스의 대사

"나이가 들면 인내심 부족해져"

인내심은 나이가 아닌 강·약자의 문제

비용·편익 분석시 '강자'는 인내심 낮아도 OK

'약자'는 인내심 낮을 경우 '반대급부' 커

나이 많더라도 퇴직 후에는 인내심 상승

영화 ‘달콤한 인생’속 배우 김영철. 구글 캡쳐본




**주의)영화 ‘달콤한 인생’ 스포일러 포함

“나이가 들면 말이야.. 점점 인내심이 부족해져.”

김지운 감독의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강 사장(김영철 분)은 자신을 떠나려는 어린 애인(신민아 분)에게 이 같이 읊조린다. 일반적으로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면 사람은 웬만한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인생의 쓴맛을 알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인내심’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강 사장은 왜 나이가 들수록 인내심이 부족해질까.

영화 속 설명은 부족하지만 강사장은 ‘적수공권’으로 사업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유추는 다음 장면 때문이다. 업계 보스급들의 회동 자리에서 백회장(전국환 분)의 아들이자 영화속 최고 ‘빌런’인 백대식(황정민 분)이 강 사장에게 다소 무례하게 굴자, 강 사장은 ‘금수저 양아치’를 경멸하듯 쏘아보는 눈빛으로 그를 굴복시킨다. 김지운 감독은 해당 장면에서 ‘자수성가’한 이의 자신감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속 강사장은 맨손에서 시작한만큼 업계 최고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인내하고 또 인내했을 테다. 기분이 안좋을 경우 부하를 마구 구타하는 백대식과 같은 행동은, 혈연이라는 뒷배없이 맨손에서 사업을 시작한 강사장이 지금껏 자제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사장도 이제는 자신의 인내심이 부족해져 간다고 말한다(아이러니한 점은 향후 자신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암시를 젊은 애인에게 넌지시 던진 것이지만 젊은 애인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또한 젊은 애인의 타고난 기질 외에 강 사장이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행동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강 사장이 마음껏 행동해도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강 사장이 이야기하는 인내심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힘)’의 문제다.

영화속 강 사장은 호텔을 운영하고 수십명의 건달은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한마디에 죽으라면 죽는척이라도 하는 부하를 수없이 거느린 그의 입장에서는, 젊은시절 그와 달리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데에 굳이 인내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인내심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이라는 점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반대급부(사회적 처벌이나 타인의 비판 등)’ 때문에 그 같은 스트레스를 억누르고 산다.



반면 본인을 떠받드는 이가 여럿인데다 금권으로 상당 이슈를 무마할 수 있는 현재의 강 사장은 다르다. 굳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반면 영화 속 백대식은 이른바 ‘응석받이’로 자란 조폭 회장 아들로서, 비교적 나이가 어리지만 본인 마음대로 행동하는 유아기 정도의 행동을 보인다. 인내심이 나이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캐릭터인 셈이다.

강 사장과 유사한 경우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입사원 시절 상사들에게 굽신거리며 회사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이들이 나중에 고속 승진을 하고 나서는, 회사내에서 손꼽히는 빌런 상사가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람이 수용가능한 스트레스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이른바 ‘스트레스 총량제’에 따르면, 이들은 젊은 시절 윗사람에게 굽신거리기 위해 생애 전체의 인내심 할당량을 상당부분 소진해서 나이가 들면 사용가능한 인내심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물론 윗사람에게는 여전히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이 이들 빌런의 특징이다). 이와 함께 회사내 권력이 강해지면서 굳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 셈이다.

부장에서 상무나 전무 등 임원이 된 이후 성격이 바뀌었다는 평을 듣는 이들도 비슷한 경우다(대기업 신입사원이 임원이 될 확률은 2~3% 정도라, 기업 임원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얌전했던 사람이 회사 내에서 승진에 수차례 물을 먹고 ‘배째라’ 식으로 있는 사례가 많은 것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나이 대비 직급은 별로 높지 않지만 회사생활 동안 쌓인 인맥 및 회사작동 메커니즘을 웬만한 사람보다 잘 아는 ‘소프트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행동을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약자 시절에서는 참고 넘어갈 일에 화를 내고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일을 트집삼아 주윗사람을 나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 강자가 될수록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것은 경제학적 ‘비용·편익 분석’에 따른 어떻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변화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강사장의 영화속 해당 발언의 맥락은 보다 복합적이다. 젊은 애인이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는 것이 상기시킨 본인의 늙은 육체에 대한 자괴감과 더불어, 아직 애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그 분노를 젊은 부하(이병헌 분)에게 표출하고 있는 ‘자기 모순적 행동에 대한 정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신이 부당하게 사용하는 권력을, 나이 탓으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논리구조라면, 나이가 많이 들어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다시금 인내심이 상승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소진된 ‘인내심 총량’이 백수생활 동안 다시 채워지는데다, 주윗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할 수록 생기는 비용(퇴직후 구직시 유입정보 제한 등)이 편익(스트레스 해소)대비 다시금 커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약자가 되기 때문에 인내심이 상승하는 셈이다.

물론 영화 속 강 사장은 결국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게 된다. 이 때 나온 대사는 그 유명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다. 약자 시절에는 그저 어금니 한번 꽉 다물고 넘겼던 모욕감이, 강자가 된 상황에서는 부하의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만 삭힐 수 있는 큰 모욕감이 된 셈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강 사장의 부족해진 인내심이 이 모든 파국의 ‘트리거’였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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