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개월 만에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다시 단행한 것은 환율이 우리 경제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탓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강도가 예상을 뛰어넘자 환율이 출렁이며 물가에 영향을 줬고 한미 간 금리 역전 폭마저 점차 벌어져 외국인 자금이 유출될 위험도 커졌다는 평가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1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직후 기자 간담회를 통해 “환율 때문에 빅스텝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환율 상승 기대가 자본 유출 압력을 높이고 외환시장 쏠림 현상을 유발하는 등 금융 불안 요인으로 일부 작용하는 점을 고려해 정책 대응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총재는 9월 이후 원화 가치의 급격한 절하가 부담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환율의 급격한 절하가 수입물가를 올려 물가가 정점 이후 상승률이 떨어지는 속도를 상당 기간 늦출 수 있는 위험을 고려했다”며 “두 번째로 너무 크게 (한미) 금리 차가 벌어졌을 경우 외화 유출이 커질 수 있고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등으로 외화 유동성을 압박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그간 한미 금리가 역전돼도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작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가운데 이 총재가 처음으로 외화 유출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연말까지 한미 간 금리 역전 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9월 중 순유출로 전환하자 위기감이 고조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24원 90전으로 전 거래일 대비 10원 30전 내리는 등 전날의 급등에서 다소 안정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당장 13일(현지 시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에 따라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시장의 관심은 이미 11월 24일 올해 마지막 금통위로 향하고 있다. 이 총재는 ‘최종 기준금리가 3.50%까지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과 관련해 “다수의 금통위원이 말한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11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국제 에너지 가격 움직임 등 대외 여건 변화와 이로 인한 국내 물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 향후 금리 인상 폭과 경로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드러냈지만 11월 당장 추가 빅스텝을 결정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확인한 셈이다.
여기에는 만장일치로 빅스텝을 결정했던 7월과 달리 두 명(주상영·신성환 금통위원)의 소수 의견(0.25% 인상)이 나온 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번 금통위에서도 (금리 인상 폭) 25bp와 50bp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려 많은 토론이 있었다”며 “금통위원들의 전반적인 의견은 워낙 불확실성이 심하다는 것으로, 11월까지 여러 요인이 시장에 주는 영향을 보고 인상 폭을 결정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미국이 11월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 12월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기준금리가 4.5%까지 뛰는 만큼 한은이 11월 빅스텝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은 이번 빅스텝으로 성장률이 0.1%포인트 하락해 내년 성장률이 당초 전망했던 2.1%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 안정을 위해 경기 침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묻자 이 총재는 “금통위원 간 의견이 다른 상황”이라며 “중립금리 수준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야 할지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금통위는 4월·5월·7월·8월에 이어 10월까지 5회 연속 금리를 올렸다. 이번 빅스텝으로 당장 성장률은 0.1%포인트 낮아지고 가계·기업의 부채는 12조 2000억 원이 늘어난다. 통화 당국으로서도 경기 침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5% 이상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물가 오름세를 꺾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