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24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예산 당국은 ‘역대급’ 조정이라고 자평했다. 예산 당국이 마른 수건까지 쥐어짤 정도로 씀씀이를 줄였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정한 예산 항목이 있다. 바로 지방교부세 77조 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80조 원이다. 관련 법률에 따라 각각 국세 수입의 19.24%와 20.79%를 기계적으로 할당해야 하는 ‘의무 지출’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재량 예산이 2% 남짓 줄었지만 양대 이전 지출 규모는 국세 풍년에 두 자릿수로 늘어났다. 이런 경직적 지출 구조가 계속된다면 국가 재정 운용과 나랏빚 관리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지방·교육 자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 따져는 보고 지출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이후 균형 발전을 국정 과제로 삼았다. 핵심 수단 중 하나가 지방재정의 확충이었다.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거나 지방교부세율과 지방 교육재정 교부율을 상향 조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 국가 수준의 재정 분권화’를 기치로 내걸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8 대 2에서 7 대 3으로 조정했다. 부가가치세의 지방세 몫인 지방소비세율을 두 배 인상한 결과다.
지방재정 확충 배경은 복합적이다. 지방·교육 자치 실시로 국가 사무를 지방정부(지방교육청)가 대신하고 있어서 그 재원을 지원해야 마땅하다는 당위론도 있지만 지방재정이 취약하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만큼은 중앙정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양호한 편이다. 김현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정책연구실장은 “국가채무(D1 기준) 가운데 중앙정부 채무는 1000조 원을 약간 웃돌지만 지방정부의 빚은 31조 원에 불과하다”며 “이는 중앙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돈을 지방정부로 이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빚내는 주체와 빚을 사용하는 주체가 다르고 세금을 걷는 책임과 세금을 쓰는 권한이 반비례하는 기형적 재정 구조인 것이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은 “해외 선진국도 중앙과 지방이 세원을 배분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괄 할당하는 사례는 일본뿐”이라며 “이런 구조로는 자체 재원을 확보할 유인이 없고 배분된 재원도 허투루 쓸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올해 6월 지방선거 이후 수십 곳의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선심성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추석을 앞두고 1인당 최고 10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뿌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는 국세가 예상보다 더 걷힌 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따라 지방교부세가 17조 원가량 덩달아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선 교육청 역시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민보다 중앙정부 눈치 보는 지자체
이런 경직적 재원 분배 구조는 1962년과 1972년 각각 지방교부세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 제정된 후 요지부동이다. 달라진 것은 꾸준히 오른 교부율뿐이다. 지방교부세율은 2006년부터 동결된 상태지만 국세의 지방세 이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방소비세율은 내년에 25.3%로 인상될 예정이다. 금액으로는 20조 원에 이른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방정부의 부족 재원을 채워주는 지방교부세는 지역 간 세수 격차를 줄이는 순기능이 있지만 무능하고 방만 재정을 일삼는 지방자치단체를 구제하는 부작용도 있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역 주민보다 중앙정부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세원의 지방 이전이 정치권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선택지여서 복지 지출처럼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국세의 지방세 이전은 외견상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 지방 권력으로 이관하는 것이지만 중앙 권력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결코 불리하지 않다. 납세자로서는 세금 부담의 차이가 없고 서울 시민이든 지방 군민이든 독자적 재원이 늘어나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파이는 그대로인데 파이 나누기로 지출 관리와 재원 마련의 책임성만 떨어지게 된다.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 일본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김 원장은 “지방재정은 예산 당국도, 국회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성역이 됐다”며 “가뜩이나 고령화·저출산으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지방재정 구조를 전면 개혁하지 않으면 ‘재정의 일본화’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처를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대학과 평생교육 분야로 넓히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지만 근본적 처방이 못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세에 연동한 기계적 배분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데다 대학생도 앞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직성 의무 지출이 늘어나면 미래의 재정 관리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다만 지방교부세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지출이므로 교육교부금의 재설계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지방교부세를 의무 지출에서 제외하기란 어렵다”면서 “대신 지방정부에 부족액을 채워주는 사후 정산형 배분 방식을 전면 개편해 재정 수요를 파악한 뒤 배분하고 나머지를 지자체 책임으로 돌리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국세의 지방세 이전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세 기반을 잠식할 뿐 아니라 지역 간 세수 불균형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2010년 법인세 일부를 지방 몫으로 돌린 법인분 지방소득세의 편중도는 자못 심각하다. 이 세목은 시·군세여서 기업이 많은 성남·수원·화성의 세수는 경기 북부의 연천·동두천과 비교하면 수백 배 차이가 난다. 수도 이전을 추진할 정도로 균형 발전에 관심이 많았던 노무현 정부가 지방소비세 도입을 검토하다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세·지방세 합리적 조정 ‘빅딜’을
국세의 지방세 이전은 국세 감소→지방교부세 인상 요구→교부세 인상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지방소비세율을 올린 결과 국세에 연동되는 교육교부금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교육교부금 배분율을 2018년과 2019년 연거푸 인상한 바 있다. 김 원장은 “재정 자립도가 높아 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들이 여러 곳 있어서 더 이상의 지방세 확대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지방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미국과 독일 같은 연방제 국가의 지방세 비율은 평균 34.3%로 우리나라보다 다소 높지만 비(非)연방제 국가의 평균 지방세 비율은 15.2%로 우리보다 낮다. 김 실장은 “재정 분권은 지방정부가 세율과 감면 결정 등 조세권의 자율성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재정 확충으로 통용돼왔다”며 “재정 분권은 앞으로 양적 확대보다 자율권과 책임성을 높이는 질적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방정부는 과세 자주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부동산 경기 조절을 위해 재산세와 취득세를 감면하는 것이 분권 역행의 대표적 사례다. 국회가 세율을 정하는 조세법률주의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지방조례로 재량권 행사(탄력 세율 적용)를 원천 봉쇄한 세목도 있다. 지방소비세와 레저세는 법정 세율로 못 박혀 있고 기름값에 붙는 주행분 자동차세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탄력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주 교수는 “일부 지방세는 국세 성격이 짙어 지방세수가 줄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세·지방세의 합리적 조정이 요구된다”며 “지방세 개편의 전제로 과세 자율권을 부여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재정 분권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무늬만’ 지방세…“일산 주민이 왜 서울에 소득세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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