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지방자치단체·금융지주사·금융투자 업계까지 당국뿐만 아니라 민간도 동시다발적으로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초긴축 정책을 펼쳐온 한은이 유동성을 풀 뜻을 밝히면서 시장은 반기는 모습이다. 다만 경색된 단기자금 시장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도가 낮은 통영에코파워는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며 단기자금 시장 경색 상황을 재확인했다.
2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와 은행채까지 포함하고 차액결제이행용담보증권 제공 비율을 현행 70%에서 내년 2월 80%로 인상하는 계획을 3개월 유예한다고 밝혔다.
담보증권 확대로 은행의 활용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은 최대 29조 원이 추가된다. 금융기관이 차액결제를 위해 한은에 제공해야 하는 담보증권 규모도 59조 7000억 원에서 52조 2000억 원으로 7조 5000억 원 감소한다. 금융기관에 36조 5000억 원의 자금 여유를 준 셈이다.
금통위는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6조 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계획도 내놓았다. 새로 발표된 조치다. 금융기관들이 RP 매매 대상 증권을 가져오면 한은이 준거금리보다 10~20bp(1bp는 0.01%포인트) 높은 금리로 이를 매입해 단기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한은은 이 정책이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해소하고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내년 1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할 계획이지만 필요시 연장도 검토한다. 금융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심리가 얼어붙은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한은이 RP 매입에 나서면 불안 심리가 완화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 당국은 이날 국민연금 등 주요 연기금 투자책임자와 민간금융 회사 임원진을 불러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했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단기자금 시장 경색의 트리거를 당긴 강원도도 시장 심리 달래기에 나섰다.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 보증 채무 전액인 2050억 원을 한달 이상 앞당겨 12월 15일까지 상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투자 업계도 힘을 보탠다.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 등 9개 대형사 사장단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ABCP를 자체 소화해 단기자금 경색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로 뜻을 모았다. 각 사가 500억∼1000억 원 자금을 각출하고,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유동화기업어음을 매입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금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서 언급됐던 매칭펀드 방식의 제2 채안펀드 조성은 A사가 B사를 직접 돕는 방식으로 자칫하면 배임 가능성이 있어 대안으로 SPC가 유력하게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채권 및 단기자금 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금융지주사들은 계열 금융사들이 발행한 자본증권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 신한·KB·하나·우리·NH 등 5대 금융지주 부사장들은 이날 금융위 금융정책국장과 만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지주의 역할을 논의했다. 이들은 기업어음·전자단기채권 및 은행채 발행을 축소하는 한편 RP 매수를 통해 증권사 자금을 지원하고 머니마켓펀드(MMF) 운용 규모를 확대하는 등 단기자금 시장 유동성 공급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노력에도 채권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채권시장 안정 정책을 내놓으며 오전에는 금리가 소폭 내렸지만 오후에는 상승 전환했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재차 급등한 데다 그간의 하락세가 컸던 만큼 차익 실현 매물들이 일부 출회했다는 분석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4.6bp 오른 연 4.254%를 기록했다. AA-급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6.7bp 튄 연 5.620%를, BBB-급 회사채 3년물은 6.2bp 오른 연 11.466%를 기록했다. 단기자금 시장도 여전히 숨통을 트지 못하는 모습이다. A1급 CP 91일물 금리는 전일 대비 4bp 오른 연 4.55%를 기록하며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도가 낮은 채권은 여전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1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던 통영에코파워는 인수 주문을 한 건도 못 받았다. 통영에코파워는 신용도가 A+로 금융 당국의 채안펀드 매입 대상이 아니다.
한편 회사채 시장에서 우량채들은 안정화 조치를 긍정적으로 소화하며 상황이 일부 개선됐다. 한국가스공사(AAA)는 공사채 2년물 1200억 원어치와 3년물 200억 원에 대한 입찰을 실시한 결과 응찰이 몰리며 각각 200억 원, 300억 원씩 추가 발행했다. 다만 가산금리 부담은 여전해 70~88bp 높은 수준에서 책정됐다.
반면 금융 당국에서는 머잖아 시장이 안정을 찾으리라 내다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하나금융그룹 행사에 참석한 뒤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펀드(PF)의 전액 차환 성공, 은행 예대율 관련 조치 등도 더해져 이번 주말을 지나면 시장의 심리도 많이 풀리고 실제 필요한 것에 대한 자금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갑·조지원·김민경·정혜진 기자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