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이 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 수출이 급감하는 가운데 수입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가격의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무역수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7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지속했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한 달 새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등 교역조건 악화 흐름이 지속되면서 올해 연간 무역적자가 50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월 무역수지 규모가 6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이로써 올해 4월부터 시작된 무역적자 행진은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한 524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한 반면 수입은 9.9% 늘어난 591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해 무역적자 규모를 키웠다. 이 중 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이 전년 대비 42.1% 늘어난 155억 3000만 달러로 집계돼 수입액 급등을 주도했다.
이번 무역적자의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가격 급등과 중국의 기술 고도화 등 여러 악재가 중첩돼 있어 당분간 반등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15대 주요 품목 수출 증가율을 살펴보면 자동차(28.5%), 석유제품(7.5%), 자동차부품(3.2%), 2차전지(16.7%)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의 경우 1년 새 30%나 가격이 급락한 D램 시장의 수요 감소 영향 등으로 무려 17.4% 역성장했다. 메타와 아마존 등 ‘반도체 큰 손’들의 수요가 추가로 줄어들 가능성이 큰 만큼 상당 기간 반도체 수출이 플러스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나머지 산업군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의 경우 지난해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에 따른 ‘역기저효과’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지역별 수출액은 유럽연합(10.3%)과 미국(6.6%)에서 증가했으나 중국(-15.7%)과 아세안(-5.8%)에서는 감소했다. 특히 대(對)중 무역수지는 올 5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9월 흑자 반등에 성공했지만 한 달 새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무역적자 행진이 이어지면서 올 들어 누적 무역적자는 356억 달러를 기록하게 됐다. 대외 교역조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올해 연간 무역적자는 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글로벌 경기 하강과 중국 봉쇄 등 대외 여건 악화 속에 반도체 단가 하락 등이 겹치면서 수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당분간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수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수출산업을 △반도체 등 주력산업 △해외건설 △중소벤처 △관광·콘텐츠 △디지털·바이오·우주 등 5대 분야로 나눠 세부 추진과제를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산업부도 이날 제3차 수출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에너지 효율화 등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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