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對) 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반면 미국, 중동, 유럽 시장 공략은 한층 강화한다. 정부의 ‘탈(脫)중국’ 기조가 본격화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올해 사상 첫 적자로 전환한 대 중국 무역수지 외에 올들어 가속화 되고 있는 글로벌 ‘프렌드 쇼어링(동맹국간 공급망 강화)’ 기조 강화가 자리한다.
실제 ‘차이나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은 2019년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타깃으로 한 제재안을 내놓은데 이어 올 들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까지 공개하며 중국을 옥죄고 있다. 미국 허락 없이는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반도체 관련 장비 도입이 어려운 구조다.
반면 총 369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상되는 IRA는 국내 이차전지 및 신재생 발전 업체에 상당한 기회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미국 주도의 경제 안보 플랫폼이자 ‘대중국 포위망’으로도 불리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 출범 및 한국·미국·일본·대만 간의 반도체 협력체인 ‘칩4’ 결성 논의까지 감안하면 수출전략의 대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여기에 글로벌 유가 급등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동지역 및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원자력 발전 수요가 높은 유럽 등을 공략해 ‘2026년 수출 5대 강국’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서울 양재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에서 개최된 제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지역별 특화전략을 세워 점검하고 각 기업이 수출 수주 과정에서 겪는 애로 사항과 정부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찾아내서 바로바로 즉각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아세안·미국·중국을 3대 ‘주력시장’으로, 중동·중남미·유럽연합(EU)은 3대 ‘전략시장’으로 각각 분류해 맞춤형 수출 지원 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우선 중국 시장에서는 양국간 경제구조 ‘탈동조화(디커플링)’에 나선다. 우리나라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가 조금이라도 주춤거리면 한국경제가 크게 휘청이는 상황이 지난 30여년간 지속돼 왔다. 10여년전부터는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이 감기에 걸린다’며 한국경제의 중국 예속 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실제 중국이 ‘제로코로나’ 정책 등으로 경제가 악화되자 대중 무역수지는 올 5월 한중수교 이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반년 새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전체 무역수지 또한 7개월 연속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올해 연간 무역적자 규모가 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또 ‘제2의 요소수’ 사태 방지에도 나선다. 대중국 원자재 수입 의존도를 낮춰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비한 방어막을 쌓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관련 연구개발(R&D) 비용 증액 등으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양국간 고위급 협력채널을 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 급격한 비중 조정이 어려운 만큼 ‘중국시장에서의 질서있는 퇴각’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정부는 반면 글로벌 공급망 전략 재편 등으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평가받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개별 기업의 관련 프로젝트 수주 및 진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 5월 양국이 시설한 ‘공급망·산업대화(SCCD)’ 플랫폼을 활용하고 IPEF에도 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아세안 지역 공략을 위해서는 ‘베트남 플러스 전략’을 꺼내들었다. 아세안 지역에서 베트남에 편중돼 있는 한국기업의 공급망을 인도네시아나 태국으로 확장해 글로벌 핵심광물 확보전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전날 발표한 주력시장 수출 전략은 사실상 ‘공급망 재편’을 골자로 한 큰틀짜기로 요약된다.
3대 전략시장 공략 방안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그림 위에 짜여졌지만, 3대 주력시장 공략 방안과 비교해 개별 사업에 초점을 맞춘것이 특징이다. 이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문으로 주목받았던 중동지역은 사우디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주목하는 스마트농업 시장 공략 등으로 ‘오일머니’ 벌이에 나선다. 1970~80년대 중동특수를 40여년만에 다시한번 기대하는 모습이다.
중남미 지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십분 활용해 수출을 늘리는 한편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이나 니켈 등 주요광물 수급을 위한 주요국과의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유럽 지역 공략을 위해 방산 수출에 적극 나서는 한편 원전 세일즈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방산 수출 시 방산 수출국의 적대국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국가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만큼,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폴란드에 대한 무기 수출을 사전 경고하기 위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바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수출전략 재편 외에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전기차 등 업종별 기술 고도화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15대 주력업종을 대상으로 한 총 654조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 이행에 힘을 쏟는다. 또 주요산업의 초격차 유지를 위한 맞춤형 민관합동 전략인 ‘산업대전환’ 정책 수립에도 나선다.
범부처 수출지원 전담체계 강화를 위해 통상교섭본부장 주재하고 14개 수출유관부처 실·국장급이 참석하는 ‘수출지원협의회’도 매달 개최한다. 또 FTA 지원센터, 무역협회, 코트라, 무역보험공사 등이 참여하는 무역통상진흥협의회를 가동하는 한편 수출현장지원단장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격상한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대규모 무역적자의 주원인이라 보고 기업이 에너지절약시설에 투자할 경우 세제지원에 나서는 한편 전기요금의 단계적 정상화에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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