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 한파가 거세지는 가운데 골드만삭스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삼성전자(005930)의 실적 전망치를 내놨다. 4분기 영업이익 증권사 전망치가 8조 원 안팎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5조 원대의 예상 영업이익을 꺼내들었다. 반도체 불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대표기업들의 시장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1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 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7조 8000억 원에서 5조 8200억 원으로 25% 하향 조정했다. 전년 동기(13조 8667억 원)와 비교하면 대비 58%나 줄어든 액수다.
반도체 사업의 급격한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2조 6000억 원에서 1조 5000억 원으로 42%나 내렸다. 지난해 4분기(8조 8400억 원)와 비교하면 무려 83%가 급락한다는 예상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1조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골드만삭스는 “경기 침체로 스마트폰·TV 등 정보기술(IT) 제품의 출하량이 감소하며 전방 수요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시장의 침체가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표 기업들의 내년 이후 사업 전략도 전면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쇼크’ 수준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의 재고 증가, 제품 가격 하락이 가파른 추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반도체(DS) 부문 내 일부 사업부에서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전체 사업 중 대부분(95%)을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하는 SK하이닉스는 문제가 더욱 크다. 글로벌 소비 여력 위축으로 메모리 주요 공급처인 PC·스마트폰 판매가 대폭 감소했고 믿고 있던 서버용 D램마저 내년 출하량이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경고’가 현실화한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내년 사업 전략 변경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업황 악화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고 증가로 공급을 줄여 가격 상승을 유도해야 할 시점이지만 경쟁사들이 이 같은 흐름으로 나설 때 오히려 가격 우위를 점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시설 투자액을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하는 등 긴축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골드만삭스의 전망대로 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한다면 아무리 삼성전자라도 감산 전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바짝 조인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 투자 규모를 더 줄여야 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21일 예정된 메모리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2023년 1분기(2022년 9~11월) 실적 발표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메모리 업황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마이크론의 실적에 따라 시장 전체의 생산량 조절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의 실적이 시장 예상을 크게 하회하면 투자 위축, 감산으로 이어지는 불황 사이클의 장기화가 현실화할 우려가 높아진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다음 날인 22일 DS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 전략 모색에 나설 계획이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산 결정이 없다면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 역시 내년 2분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4분기 실적 발표에서 감산 계획을 밝힐 가능성을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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