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준에서 전기 동력화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국가간 경쟁력 역학 관계가 변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산업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19 대응, 탈탄소 경제 전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에너지 위기 대응, 디지털 경제 전환 등으로 인해 각국의 보조금이 향후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OECD에 의하면 현금 혹은 세제 지원, 특혜 금융 등 각국 정부의 기업에 대한 지원은 2018년 3,903건에서 2019년 4,437건, 2020년 5,081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은 2021년부터 몇 차례 입법을 통해 산업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21년 11월 제정된 ‘인프라투자와 일자리법’에 의거 1조 2000억 달러를 투입해 도로와 교량, 인터넷 통신망 등 낙후된 물적 인프라를 개선하는 한편, 전기차 충전소 구축과 배터리 산업 등에 307억 달러를 지원한다. ‘반도체 과학법’에 의거 527억 달러를 반도체 제조 시설 구축,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작년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미국은 3,910억 달러를 전기차, 배터리 등에 지원하고 외국산에는 보조금 미지급 등 차별적 대우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도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에 의거 전기차, 반도체 등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확대 중이다. 중국은 핵심 부품 등의 국산화율을 2020년 40%, 2025년 70%까지 올려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고속철도, 고효율·신에너지 차량 등 10대 핵심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중국은 타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 중이다. 2019년 중국이 제공한 직접 보조금, 특혜 대출, 세금 감면 등은 2,480억 달러로 추정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73%로, 미국의 0.39%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중국의 정부 보조금은 자동차와 반도체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2021년 5억 9,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은 상하이자동차그룹을 비롯해 비와이디, 장성자동차, 장화이자동차 등 자동차회사들이 보조금 수혜 상위 10대 기업에 포함됐다. 반도체는 2015년부터 10년간 1조 위안을 투입하는 등 굴기를 천명했으나 미국 제재로 목표 달성 여부는 불확실하다. 앞으로의 양상이 주목된다.
유럽연합(EU)도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시행중이다. 2020년 마련된 유럽 그린딜 투자 계획에 따라 친환경차 보급 등에 10년간 1조 유로를 투입하는 한편, 2022년 마련된 신산업전략에 따라 친환경에 약 2500억 유로, 디지털화에 약 1300억 유로를 지원한다. 또 EU는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의 20%를 역내에서 생산하겠다며 약 430억 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산 지속 가능성 강화와 역내 생산 확대를 위해 배터리 법안 마련도 추진 중이다. 회원국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독일은 미국 IRA보조금에 대응해 EU산 상품 사용을 유도하는 보조금 제공 방안을 검토하는 중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 동력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정부 불개입주의를 내세웠던 미국마저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국가간 불균형적 산업정책과 지원은 기업 경쟁력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보조금 등 혜택이 많은 국가에 있는 기업들의 경쟁력은 다른 기업 대비 높아질 것이다. 기업의 입지 선택에 있어 정책은 중요한 고려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외국보다 좋진 않아도 적어도 동등한 보조금 등 정책 환경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아니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되고 해외 이전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기업의 국제간 이동과 산업 정책이 일상화되는 시대, 세계 각국의 변화를 감안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논란이 된 반도체 세제 지원 문제도 같은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은 물론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