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방문(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이나 총재님 발표를 보면 사실상 이번을 끝으로 금리 인상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부터 동결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기자)
“제가 지금 발표한 것이 금리를 지금부터 동결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발표한 것을 앞으로 금리를 동결하는 것으로 해석하시면 좀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이창용 총재)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3.50%로 사상 첫 7연속 금리 인상에 나선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문답이 오갔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금통위 결과가 향후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이야기하는 것조차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이 발언 자체로만 보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금통위 직후 시장에서는 이 총재 발언과 달리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지 않고 동결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JP모건이나 씨티 등은 현수준인 3.50%에서 금리 인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월 금통위를 요약하면 ‘이 정도면 됐다’의 느낌”이라며 “향후 기준금리 경로는 인상보다는 동결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한은의 매파적 기조 유지 노력에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라며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사이클은 종료에 가까워졌다는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국고채 금리도 영향을 받았다. 당일 금리 인상에도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37%로 전 거래일보다 10bp(1bp는 0.0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8월 24일(3.31%)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리 인상 중단과 함께 금리 하락까지 예상한 움직임이다.
이 총재는 간담회 중 추가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으나 시장이 이와 전혀 다르게 반응한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봤다.
시장은 이 총재 발언보다 간담회 직전 발표된 통방문에 더 주목했다. 통방문은 금통위가 향후 정책 방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료다. 금통위원들의 합의를 통해 작성되는 만큼 문구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통방문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된 이후 가장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먼저 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 반드시 포함됐던 ‘완화 정도의 조정’, ‘금리 인상 기조 유지’ 표현이 사라졌다. 특히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아닌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로 문구가 바뀌었다. 현 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은 충분히 제한적인 수준인 만큼 금리를 더 올리지 않아도 긴축 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시장은 이것만으로도 금통위 내부에서 추가 금리에 대한 신중론이 강해졌다고 봤다.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가 아닌 ‘추가 인상 필요성’을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는 우선 금리 인상을 전제로 한 다음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이냐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이냐를 고민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금리를 올릴지 말지부터 고민해보겠다는 것이다.
정책 고려 요인의 최우선 순위도 ‘높은 인플레이션의 지속 정도’에서 ‘성장의 하방 위험과 금융 안정 측면의 리스크’로 바뀌었다. 성장 하방 위험을 신경 쓴다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그간의 금리 인상 파급효과’도 추가됐는데 이는 연속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추는 표현이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로 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그대로 둔 것도 금리 동결을 예상하는 주요 포인트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전망 당시 올해 성장률을 2.1%에서 1.7%로 0.4%포인트나 낮췄는데 약 두 달 만에 다시 하향 조정을 시사했다. 지난해 4분기는 역성장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만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반면 물가는 1~2월까지 5%대를 유지하다가 이후 점차 낮아질 것으로 보면서 연간 상승률 3.6%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경기 둔화로 수요가 꺾이고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물가 하락 효과와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 효과가 상쇄되면서 전망치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수시로 물가 전망을 상향 조정하던 모습과 달라졌다. 바꿔 말하면 금리를 더 올리지 않아도 물가가 급등할 확률이 낮다고 본 셈이다.
물가가 4%대로 떨어지고나면 고물가 대응에만 집중했던 한은의 통화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총재는 “저희 예상으로 1~2월이 지나고부터 물가 상승세가 5%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연말에는 3% 가까운 하락 기조를 보일 것”이라며 “이제는 물가가 5% 이상일 때보다 물가와 경기, 금융안정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교한 통화정책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총재는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서 3.50%로 당분간 동결하자는 의견이 3명, 3.75%로 한 번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3명으로 갈렸다고 설명했다. 단순화하면 매파 3명, 비둘기파 3명이다. 이번 금통위에서 주상영·신성환 등 두 금통위원이 금리를 동결하자는 소수의견을 낸 것을 감안하면 숨은 비둘기파가 한 명 더 있다는 의미다.
3.75%를 주장한 금통위원들도 적극적인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3대 3이지만 동결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세 명은 2월에 3.75%가 될 수도 있고 지켜보더라도 그 정도 선에서 올리는 것을 배제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반드시 올린다는 뜻보다는 배제하지 말자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3.50%(3명)와 3.75%(3명)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열리는 2월 금통위에서 이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도 있다. 다만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은 이후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사례는 단 세 번 뿐인 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다. 만약 다음 달 금리가 3.75%로 오르더라도 금리 인상은 거기서 멈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성장·물가 흐름을 봤을 때 금리를 3.75%까지 올리려면 2월이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올해 1분기가 금리 정점인 셈이다.
이 총재의 발언에서도 비둘기파 신호가 감지됐다. 지난해 9월 이후 한미 금리가 역전된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으로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국내 여건을 보겠다고 한 것이다.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계속돼 금리 격차가 굉장히 커질 때 생길 수 있는 금융안정에 대한 걱정 등을 고려하겠으나 기본적으로는 국내 상황을 보면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금리 역전 폭이 확대되더라도 무리해서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금리 역전 폭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금리가) 과도하게 너무 벌어지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으니까 좀 유의해야 된다는 것”이라며 “(역전 폭이) 75bp(1bp는 0.01%포인트)면 안 되고 100bp면 좀 위험하고 150bp면 아주 위험하고 이런 이론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미 금리 역전에도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30~1240원대로 안정되자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마침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1월 7.1%에서 12월 6.5%로 둔화되면서 연준의 통화 긴축 완화 기대도 커졌다.
부동산 경기 부진을 언급한 점도 금리 추가 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부동산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로 비우량 채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에 대한 금융시장 높은 신용 경계감이 유지돼 있다”고 했다. 다만 부동산 시장은 정부 재정정책이나 규제로 대응해야지 금리로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 입장에서 가계부채 누증, 부동산 PF 부실화 등 금융 불안과 같은 위험 트리거를 자극하며 금리 인상을 추가로 단행할 명분은 없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이 총재는 간담회에서 금리 동결 해석을 경계하는 동시에 금리 인상 가능성도 낮추는 발언을 동시에 내놓았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 발언 자체는 중립적 또는 모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파적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왜 이 총재는 정책 방향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을까.
먼저 섣부르게 금리 인상 종료를 선언할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 불안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해석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마무리 단계에 다가왔지만 매파적인 언급을 통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반등할 가능성을 통제하는 정책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총재가 명시적으로 기준금리 동결을 언급하진 않은 것은 워낙 매크로 불확실성이 크고, 최근 금리 하락이 가파른 것에 대한 부담으로 종착점을 단정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예상대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결국 하고자 했던 말은 ‘이 정도면 됐다’ 같다”고 분석했다.
권기중 IBK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이 총재가 물가 안정 의지를 강하게 보인 것은 시장 내 과도한 기대감을 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라며 “그의 발언과는 다르게 향후 한은의 정책 스탠스는 경기 침체를 막는 것에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금통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블룸버그 등 외신에서는 이 총재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했다. 금리 인상을 중단해야 하는 시기가 점차 다가오면서 중앙은행 총재들이 물가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도 시장에 정책 방향 전환을 알리는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이번 금통위에서 매파적 신호를 유지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발언 자체보다 문맥상 의미를 통해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음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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