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비효율적 규제의 대표 사례 중 하나인 ‘주기적 지정감사제’를 폐지해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규제로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8일 금융위원회에 주기적 지정감사제에 대한 경제계 의견서를 전달했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는 한 회사가 6년 이상 동일 감사인을 선임하면 이후 3년 동안 정부가 새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경제계는 건의서에서 “지정감사제 도입이 감사인과 피감 기업 간 유착 관계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 품질이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외부감사인 품질관리 감리 관련 지적 건수는 2019~2020년 평균 11.5건에서 2021년 평균 13.9건으로 약 21%(2.4건) 증가했다.
대한상의는 감사 품질 하락의 주 원인으로 △감사인 적격성 하락 △감사인의 노력 약화 △필요 이상의 기업 부담 증가 등 세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우선 지정감사제는 피감 기업의 업종·특성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감사인을 선임하게 돼 적격성이 낮아진다고 꼬집었다. 지정감사인 매칭이 기업 및 회계법인 규모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뤄져 감사인의 전문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또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사는 감사인 후보 자체가 적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지정감사제로 감사인 역량이 하향 평준화되는 문제도 언급됐다. 일례로 2000년대 중반 E&Y 회계법인은 미국의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PCAOB)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감사인 의무 교체 제도는 특정 업종을 전문 영역으로 개척해온 회계사들이 높은 품질의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 부담을 필요 이상으로 증가시킨다는 문제도 중요하게 지적됐다. 기업 규모, 거래 구조의 복잡성, 업종의 특수성에 따라 기존 감사인 대비 투입되는 감사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감사 보수도 늘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설명이다. 또 빈번한 감사인 교체로 신규 지정감사인의 과도한 지적 사례가 늘면서 기업 재무제표 수정, 이에 따른 주주 신뢰 하락 문제도 언급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비적정 의견 회사 수는 2018년 43개 사에서 2021년 68개 사로, 감사 의견 변경 회사 수는 2019년 8건에서 2021년 19건으로 각각 늘었다.
국제적 관점으로 보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 등은 자유 수임제 또는 의무 교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지정감사제를 폐지하거나 전문성·독립성이 조화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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