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4월부터 이어진 7차례 연속 금리 인상 행보를 멈췄다. 5%대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금리 인상 파급 효과를 점검하기로 했다는 평가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높아질 수 있는 만큼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진단하긴 이른 상황이다.
한은 금통위는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초 7회 연속 금리 인상 행보도 여기서 멈췄다. 다만 기준금리 자체는 2008년 12월(4.00%)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유지됐다.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가장 큰 이유로는 단기적 경기 부진 심화가 꼽힌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로 역성장으로 전환한 가운데 연초부터 수출 부진이 심상치 않다. 이달 20일까지 수출액은 335억 49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다. 이대로면 5개월 연속 감소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 심리나 기업 체감 심리 등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이날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6%로 0.1%포인트 내려 잡았다. 하반기 경기 개선을 예상하면서도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내려 잡은 것은 그만큼 단기적 경기 부진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그러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3.6%에서 3.5%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경기는 어렵고 물가는 잡힌다고 보면서 금리 동결 결정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 물가는 2.5%에서 2.6%로 올리면서 물가 안정이 예상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금통위는 지난달부터 금리 동결 신호를 내왔다. 먼저 통방문에서 ‘금리 인상 기조 유지’ 표현이 사라지고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로 문구가 바뀌었다.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가 아닌 ‘추가 인상 필요성’을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서도 3.50% 3명, 3.75% 이상 3명 등으로 나뉘었다고 했지만 추가 인상을 주장하는 위원들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는 수준으로 동결에 힘이 실렸다.
이번 금통위를 앞두고 미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5.00~5.25%에서 5.25~5.50%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급부상하면서 변수가 늘었지만 결국엔 동결을 선택했다. 금리 인상으로 급선회하기엔 시간이 촉박했을 뿐만 아니라 미 연준의 최종금리가 실제로 높아질 수 있는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만 금리 동결에도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선언하긴 이른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5.25~5.50%까지 높아진다면 한미 금리 역전 폭이 200bp(1bp는 0.01%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 역전 폭 150bp를 훌쩍 넘는 200bp는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
또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로 전월(5.0%)보다 소폭 높아진 가운데 이달 기대인플레이션도 3개월 만에 4%대로 올라선 상태다. 이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도 전기요금과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미 연준의 긴축 우려로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1300원대로 진입한 것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공공요금 인상이 상품·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2차 파급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리 동결에도 인상 소수의견을 낸 금통위원이 1~2명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금통위원들은 1월 금통위 당시에도 추가 인상을 주장해왔다. 이와 함께 이창용 총재도 오전 11시 10분부터 시작되는 기자단감회에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경우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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